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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시누이의 5주기를 기리기 위해 주말 동안 나를 외딴 별장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살아있는 시누이를 보았다. 그녀는 남편과, 심지어 나의 부모님과 함께 테라스에서 웃고 있었다. 그들은 남편의 머리칼과 ‘죽은’ 시누이의 눈을 가진 어린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즐거워했다.
박주원은 나를 ‘순종적이고 슬픔에 잠긴 아내’라 부르며, 속이기 참 쉬운 여자라고 비웃었다. 나의 친어머니는 단 한 번도 내게 보여준 적 없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박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5년간의 결혼 생활은, 그들이 비밀리에 진짜 인생을 사는 동안 나를 붙잡아두기 위해 설계된 한 편의 연극이었다.
그는 단순히 고백만 한 게 아니었다. 내가 ‘쓸모 있는 해결책’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마지막 계획을 밝혔다. 그들은 내가 꾸며낸 ‘슬픔’을 빌미로 나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킬 준비를 이미 마친 상태였다.
나는 도망쳤다. 소란을 피우기 위해 불을 지른 뒤, 도로 옆 배수구에 숨었다. 내 인생은 잿더미가 되었다. 기댈 곳 하나 없는 상황에서, 나는 남편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단 한 사람에게 필사적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의 최대 라이벌에게.
제1화
5년 된 거짓말에는 이름이 있었다. 박서연.
나는 잘 가꿔진 별장 정원에서 몸을 떨며 서 있었다. 무성하게 자란 재스민의 두껍고 향기로운 장막 뒤에 숨어서. 늘 위안을 주던 그 향기는 오늘 밤따라 역겨웠다. 비와 기만의 냄새가 진득하게 배어 있었다. 축축한 안개가 내 피부에 달라붙어 얇은 드레스 안으로 스며들었다. 이 드레스는 박주원이 ‘편안한 주말여행’을 위해 직접 골라준 것이었다. 그의 비극적으로 죽은 동생의 기일을 견디는 나를 위한 주말.
하지만 박서연은 죽지 않았다.
그녀는 불과 몇 미터 떨어진 석조 테라스 위에 서 있었다. 프렌치 도어에서 쏟아지는 따뜻하고 황금빛 조명을 받으며. 반세기 동안 듣지 못했던 웃음소리를 내지르며, 고개를 젖힌 채 내 남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 남자, 박주원을. 그는 몇 년간 본 적 없는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품에 안은 작은 아이를 가볍게 흔들어주고 있었다. 주원의 검은 머리칼과 서연의澄澈한 눈을 가진 아이였다.
나의 부모님도 그곳에 있었다. 어머니는 서연의 팔에 손을 얹고, 내가 단 한 번도 끌어내지 못했던 기쁨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버지는 주원의 옆에 서서 그의 어깨를툭 치며, 마치 진정한 가족을 거느린 자랑스러운 가장처럼 행동했다.
“날이 갈수록 널 더 닮아가는구나.”
축축한 밤공기 속으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날아왔다.
“그래도 저 고집스러운 턱은 당신을 닮았어요.”
내가 묻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삶에서 들려오는 유령의 메아리처럼, 서연의 목소리가 답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아이의 코를 살짝 건드렸다.
머리가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건 꿈이다. 악몽이다. 서연은 교통사고로 죽었다. 우리는 장례식도 치렀다. 나는 몇 달 동안 산산조각 난 주원을 위로하고, 슬픔에 잠긴 내 부모님을 다독였다. 그녀가 남긴 빈자리를 중심으로 내 삶을 재건했다.
“서아는 정말 아무것도 눈치 못 챈 거 확실해?”
아버지의 목소리는 낮게 울렸다. 익숙하고, 무시하는 듯한 짜증이 섞여 있었다.
주원이 코웃음을 쳤다. 날카롭고 추악한 소리였다.
“강서아는 내가 의심하라고 하는 것만 의심해. 순종적이고 슬픔에 잠긴 아내 역할에 너무 심취해서, 진실이 코앞에 있어도 모를걸. 아직도 이번 주말이 서연이 추모하는 여행인 줄 안다고.”
끔찍한 구역질이 밀려와 손으로 입을 막아야 했다. 세상이 기울어지는 듯했고, 재스민 덩굴이 나를 휘감으며 뒤틀리는 것 같았다. 순종적인. 슬픔에 잠긴. 아내. 그 단어들은 독약과도 같았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서연의 목에 걸려 빛을 반사하는 독특한 고풍스러운 은색 로켓. 정교하게 조각된鳴鳥 모양에 작은 사파이어 두 개가 눈으로 박혀 있었다. 할머니의 로켓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결혼하기 몇 년 전, 강도를 당해 잃어버렸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었다. 값을 매길 수 없는 가보가 영원히 사라졌다고. 그런데 그것이, 유령이어야 할 여자의 살갗 위에서 버젓이 빛나고 있었다.
퍼즐 조각들이 역겨운 속도로 맞춰졌다. 가짜 결혼. 거짓말들. 내 모든 인생은, 그들이 완벽하고 소중한 박서연을 안전하게 숨겨두는 동안, 내 상속 재산을 통제하고 나를 붙잡아두기 위해 세심하게 설계된 연극 무대였다.
나는 아내도, 딸도 아니었다. 나는 대역이었다. 도구였다.
충격을 뚫고 차갑고 순수한 분노가 타올랐다. 여길 벗어나야 해. 당장.
나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발걸음은 서툴렀고, 부드럽고 축축한 흙에 발이 빠졌다. 발뒤꿈치 아래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그 소리는 고요한 밤에 울리는 총성과 같았다.
테라스에 있던 모든 고개가 내 쪽으로 향했다. 주원의 미소는 사라지고, 차가운 분노의 가면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강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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