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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대기업 대표, 내 남편 강태준은 완벽했다. 2년 동안 그는 나를 끔찍이 아꼈고, 우리 부부는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한 쌍이었다.
그의 과거에서 온 한 여자가 창백하고 병든 네 살배기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의 아들이라고 했다.
아이는 백혈병이었고, 태준은 아들을 살리는 데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병원에서 소란이 있던 날, 그의 아들은 발작을 일으켰다. 그 혼돈 속에서 나는 세게 넘어졌고, 배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고통이 온몸을 관통했다.
태준은 아들을 안고 나를 그대로 지나쳤다.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나를 버려둔 채.
그날, 나는 홀로 우리 아기를 잃었다. 그는 전화 한 통조차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그가 마침내 내 병실에 나타났을 때, 그는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내가 우는 진짜 이유도 모른 채, 곁에 있어 주지 못했다며 용서를 빌었다.
그때, 나는 보고야 말았다. 그의 목에 선명한 검붉은 키스마크를.
내가 우리 아기를 잃어가던 그 순간, 그는 그 여자와 함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아들의 마지막 소원이 부모님이 결혼하는 걸 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내게 임시 별거와 그 여자와의 위장 결혼에 동의해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그의 이기심으로 가득 찬 절박한 얼굴을 보았다. 그러자 기이할 정도의 평온이 나를 감쌌다.
“그래.” 나는 말했다. “그렇게 할게.”
제1화
병원 특유의 깨끗하고 싸한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진찰대 끝에 앉아 간호사가 부엌칼에 살짝 베인 내 손을 능숙하게 치료하는 것을 지켜봤다. 정말 바보 같은 실수였다.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태준은 꼭 병원에 가보라고 고집을 부렸다.
진료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그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비싸 보이는 수트가 살짝 구겨져 있었다.
“은하야, 괜찮아?”
이사회를 호령하던 그의 눈이 걱정으로 동그래져 있었다. 그는 간호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내게 달려와 다치지 않은 손을 덥석 잡았다.
“태준 씨, 나 괜찮아요. 그냥 살짝 베인 거예요.”
그는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는 새로 감은 붕대를 마치 심각한 상처라도 되는 양 살피며, 엄지손가락으로 내 손목을 부드럽게 쓸었다.
“조심 좀 하지.”
그의 낮고 다정한 목소리에는 늘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집착에 가까운 걱정이 배어 있었다.
친절한 얼굴의 젊은 간호사가 우리를 보며 미소 지었다.
“복 받으셨네요. 남편분이 정말 사랑하시나 봐요.”
나도 마주 웃었다. 가슴속으로 따뜻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네, 알아요.”
우리는 완벽한 커플이었다. 서은하와 강태준. IT 대기업 대표를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한 전직 믹솔로지스트와, 그런 그녀를 지극히 사랑하는 남자. 지난 2년간 우리 부부는 모두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그때, 아이의 가슴 찢어지는 울음소리가 조용한 진료실을 갈랐다. 순수한 고통이 담긴 소리였다. 뒤이어 아이를 달래는 다급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옆방에서 들려왔다. 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간호사가 슬픈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저런, 불쌍한 아기. 항암 치료받으러 왔나 봐요.”
“항암 치료요?” 나는 내 작은 상처는 잊은 채 물었다.
“백혈병이래요.”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이제 겨우 네 살이라는데. 너무 안됐죠.”
안타까운 마음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저 아이와 엄마가 겪고 있을 고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정말 끔찍하네요.” 내가 속삭였다.
태준이 내 손을 꽉 쥐었다. 그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안타깝지만 우리랑 상관없는 일이잖아, 은하야. 집에 가자.”
그는 늘 그랬다. 우리의 완벽한 세상 밖에 있는 일에는 무관심하고 조금은 차가웠다. 그는 나를 진찰대에서 일으켜 세우며 떠날 채비를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옆방 문이 열렸다. 지친 눈빛에 낡고 저렴해 보이는 옷을 입은 여자가 작고 창백한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 나왔다.
아이는 얼굴이 눈물로 얼룩진 채 흐느끼고 있었다. 여자는 절박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태준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이내 그녀의 얼굴은 충격과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감정이 뒤섞여 일그러졌다.
그녀는 아이를 끌고 한 걸음 다가왔다.
“강태준 씨?”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강태준 씨 맞죠?”
내 옆에 서 있던 태준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는 돌아보지도, 대답하지도 않았다.
여자가 다시 한 걸음 다가왔다. “저예요. 유라. 라스베이거스에서… 4년 전에요.”
나는 여자와 내 남편을 번갈아 보았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등골을 타고 오싹한 불길함이 퍼져나갔다.
레오라는 이름의 작은 아이가 태준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작고 창백한 얼굴에서, 나는 보고야 말았다. 날렵한 턱선과 깊은 눈매를. 내 남편을 그대로 축소해 놓은 듯한 얼굴이었다.
태준이 마침내 돌아섰다. 그의 얼굴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굳어 있었다. “누구시죠?”
그의 부정은 너무 빨랐다. 지나치게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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