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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청아는 간암을 앓았고 간이식 수술이 시급했다. 그런데 그녀는 결혼한 지 5년 된 남편 노용성이 자신의 간 기증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려 한다는 사실과 함께 노용성이 그동안 밖에 애인이 있었고 그들 사이에 아이까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충격에 고청아의 마음에서는 피가 흘렀다.
이렇게 된 이상, 바람 핀 남편 놈은 이제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간 이식 기회는 반드시 되찾아야 했다.
고청아는 5년간 연락 끊었던 그 전화번호에 다시 연락을 했다. "나 경시에서 수술 받을 거에요. 3일 뒤에 마중 나와 주세요."
고청아가 사라지자, 노용성은 제 정신을 잃었다.
…
고청아는 간암 앓은 지 3년만에 마침내 적합한 공여자를 찾았다.
주치의의 전화가 걸려왔을 때, 남편 노용성은 배려 깊게 그녀의 이불자락을 추스려 준 뒤, 혼자 발코니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노용성은 그녀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한다 치고, 항상 단독으로 의료진과 소통을 해왔었다.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호기심에 그녀는 침상 옆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전화내용을 몰래 들었다. 그리고는 발코니 문을 살짝 열어두었다.
"형, 고청아의 간기증 기회를 이슬이의 엄마에게 주고 싶은 거 확실해?" 주치의가 물었다.
"그렇게 할 거야. 이슬이가 엄마를 잃는 걸 지켜볼 수 없어. 그녀는 어쨌든 내게 딸을 낳아 줬어." 노용성이 대답했다.
"그런데 형, 고청아가 간이식을 빠른 시일내 받지 못한다면 생명이 위태로워." 주치의는 충분히 신중하게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녀에게 아직 3개월시간이 남아 있잖아. 좀 더 기다릴 수 있어. 곧 다른 공여자가 생길지도 모르잖아..." 노용성은 덤덤히 대답했다.
그 둘의 말은 고청아에게 청천벽력이나 마찬가지였다. 고청아는 순간적으로 귀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오직 '그녀는 어쨌든 내게 딸을 낳아 줬어.'라는 그 한 마디만이 계속해서 맴돌 뿐이었다.
노용성이 그녀에게 빈틈없이 잘해준다는 사실은 친근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3년 동안 그녀가 입원한 횟수는 셀 수 없을 정도였고, 그럴때마다 노용성은 잠도 자지 않으면서 곁에서 세심히 돌보았다.
그녀가 병원의 음식을 싫어하자 그는 하루에 여섯 번씩 병원과 집 사이를 오가며 직접 한 요리를 그녀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녀가 죽음과 번번이 스치던 순간, 그는 항상 수술실 밖에서 기도하였다. 심지어 사원 문 앞에서 밤새 머리를 조아리며 그녀의 건강을 빌기 위한 평안부(平安符) 하나를 받으려 애썼다.
그렇게 자신의 생명처럼 그녀를 아끼고 사랑하던 남자가, 어떻게 그녀를 배신할 수 있었을까?
발기척에 고청아는 잠겼던 사색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분명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스스로 확신했다.
10년 간 이어온 사랑, 그녀가 죽음을 앞둔 지금도 그는 포기라는 단어조차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런 그가 어찌 그녀를 저버릴 수 있겠는가.
그녀가 이어폰을 빼려고 손을 뻗는 순간 또 다른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여보, 오늘 우리 딸 생일이에요. 언제 와요?"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가 물었다.
고청아의 세상은 다시 산산조각이 났다.
"곧 출발해." 노용성이 정겨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빠, 나 저번에 쇼핑몰에서 본 그 바비 인형 갖고 싶어!" 여자애의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아빠가 이미 선물 사놨지. 조금만 기다려~" 노용성이 말했다.
고청아가 이어폰을 뺀 순간 눈물이 주체 못하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헛된 희망을 품고 있던 그녀는 이제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노용성, 그가 정말로 밖에 또 다른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고? 그녀의 존재는 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노용성이 18살 되던 해, 부모를 여의고 의지할 곳 없어 고청아의 부모님이 그를 불쌍하게 여겨 고씨 집안에 발을 들였다. 고청아는 노용성을 보자마자, 그 청청한 눈동자에 가득한 우수와 과묵한 성격에 순간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예상대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다. 대학 시절부터 졸업 후 결혼까지, 노용성은 그녀를 공주처럼 아꼈다. 고청아의 부모님께도 줄곧 '평생 그녀를 잘 해주겠다.' 면서 맹세했다.
오랜 병상에 누운 아내의 변덕은 일상다반사였지만, 노용성은 그저 다정히 손을 잡아줄 뿐 한마디 불평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수많은 밤, 그녀가 아파 잠에서 깰 때면 그는 항상 곁에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 꽉 안고 애원했다. "조금만 더 버텨줘! 제발 나 혼자 두고 가지 말아줘!" 그렇게 고청아는 위독한 순간마다 노용성의 위로때문에 다시 버텨낼 수 있었다.
그녀는 간 이식을 기다리며 마침내 희망을 볼 줄 알았지만 정작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더 끔찍한 지옥이었다는 걸 몰랐다.
"자기야, 왜 울어?무슨 일이야?" 노용성이 들어오면서 울고 있는 고청아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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