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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아, 너희 남편 아직도 전화 안 받아?"
동료 하서윤의 걱정 섞인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고, 원서연은 그 안에 담긴 연민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계속 울리는 부재중 신호음에 원서연의 마음은 점점 더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이틀 전, 배준혁이 준비 중인 전시회 점검차 미술관에 들린 원서연은 갑작스레 무너진 철제 구조물에 의해 폐허속에 갇혀버렸다. 구조대를 기다리는 3시간 동안, 그녀는 계속 배준혁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단 한 번도 연결되지 않았다.
마침내 구조되었을 때, 원서연은 온몸이 피로 얼룩져 있었고 철심 세 개가 박힌 오른쪽 어깨는 지금까지도 은은한 아픔이 밀려오고 있었다.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는 원서연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이틀 전의 악몽이 아직도 그녀의 몸과 마음에 선명히 남아 있어 핸드폰을 들고 있는 손마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차갑게 식어버린 가슴이 더 아팠다.
매번 원서연에게 배준혁이 필요할 때면, 그는 항상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런 원서연의 표정을 본 하서윤은 더는 참지 못하고 불평을 터뜨렸다. "대체 너희 남편은 뭐 하는 사람이야? 아내가 이렇게 크게 다쳤는데, 어떻게 이틀 동안 전화 한 통 안 받을 수 있어? 게다가 퇴원하는 날까지도 남이 데리러 와야 한다니, 이게 뭐야. 이건 남편이 없는 거랑 다름없잖아."
그 말에 원서연은 힘없이 웃으며 자조 섞인 말투로 중얼거렸다. "아마도 바쁜가 봐..."
결혼한 3년 동안, 배준혁의 핑계는 늘 똑같았다. 바쁘다는 말, 혹은 아예 전화를 받지 않는 무관심.
이름뿐인 '배 사모님'이라는 타이틀에, 원서연은 바보처럼 모든 걸 감내해왔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전화를 받을 시간조차 없다는 게 말이 돼?" 하서윤은 단호하게 반박했다.
하지만 그 말은 날카로운 바늘처럼 원서연의 마음을 찔렀고, 애써 자신의 마음을 마비시키려던 핑계마저 산산조각 내버렸다.
원서연은 마음속의 쓰라림을 꾹 삼키며 애써 웃음을 지었지만, 그 웃음은 차라리 우는 것보다도 못했다.
바로 그때, 핸드폰을 보고 있던 하서윤이 갑자기 소리쳤다. "헐, 세상에! 감정 따윈 없는 줄만 알았던 배 대표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까지 제치고 지구 반 바퀴를 돌아서 그녀의 전시회를 지원하러 가셨대!"
그 순간, 살을 에는 듯한 한기가 원서연의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하서윤은 핸드폰을 원서연에게 내밀며 혀를 찼다. "배 대표님 봐봐. 그리고 네 남편 봐봐. 넌 겨우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네 남편은 전화 한 통도 받지 않잖아. 서연아, 너 너무 한 사람한테만 목 매달지 마. 그럴 가치도 없는 사람이잖아."
원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핸드폰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하서윤은 당연히 모를 것이다. 그녀가 말한 그 '배 대표님'이 바로 원서연이 아무리 연락해도 닿지 않았던 그 매정한 남편이라는 것을.
그리고 원서연은 그제야 깨달았다. 배준혁이 말한 '출장'이란, 다름 아닌 그의 첫사랑 박효민을 위해 떠난 여행이었다는 걸.
한때, 배준혁과 박효민은 모두가 부러워할 만큼 불타는 사랑을 나눈 사이였고, 다들 두 사람이 꼭 결혼할 줄 알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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