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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약혼자, 서지훈과 내 동생, 주예리가 내가 3년간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든 곡을 훔쳐 갔다.
그건 내 필생의 역작이었다.
우리의 커리어를 함께 정의해 줄 단 하나의 곡.
나는 녹음실의 반쯤 열린 문틈으로 그들의 모든 계획을 엿들었다.
"이게 네가 뱅가드 어워드를 탈 유일한 방법이야, 예리야."
지훈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번이 단 한 번뿐인 기회라고."
내 가족까지 한통속이었다.
"언니가 재능은 있지. 근데 멘탈이 약하잖아."
예리는 부모님의 말을 그대로 인용했다.
"가족을 위해서 이게 최선이야."
그들에게 나는 딸도, 3개월 뒤 결혼할 여자도 아니었다.
그저 부품, 도구일 뿐이었다.
진실은 맹독과 같았다.
천천히, 온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독이었다.
내가 사랑했던 남자, 나를 키워준 가족.
그들은 내가 태어난 날부터 내 재능에 기생하며 모든 것을 빨아먹고 있었다.
그리고 내 뱃속의 아이는?
우리의 미래를 상징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이 나를 가두기 위해 만든 우리에 채울 마지막 족쇄일 뿐이었다.
나중에 지훈은 아파트 바닥에 쓰러져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걱정스러운 척했다.
그는 나를 품에 끌어안고 머리카락에 대고 속삭였다.
"우리 앞날은 창창해. 우리 아기 생각해야지."
바로 그 순간,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깨달았다.
다음 날, 나는 전화를 걸었다.
다른 회선으로 엿듣고 있던 지훈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진짜 공포에 질려 갈라지는 것을 들으며, 나는 차분하게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네, 안녕하세요. 내일 예약 확인 좀 하려고요."
"그... 수술 말이에요."
제1화
주예은 시점:
내가 3년간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든 멜로디는 내 인생 최악의 배신을 위한 배경음악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집처럼 드나들던 녹음실의 반쯤 열린 문틈으로 그 모든 것을 들었다.
"언니가 정말 아무것도 눈치 못 챌까?"
예리의 목소리는 불안한 속삭임이었다.
가늘고 갈대처럼 흔들리는 목소리.
노래할 때 보여줘야 할 힘 있고 감성적인 톤과는 전혀 달랐다.
찰나의 침묵.
나는 내 약혼자, 지훈이 완벽하게 세팅한 검은 머리를 쓸어 넘기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는 예리의 불안감을 다룰 때만 짓는 사려 깊은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겠지.
"확실해."
그가 말했다.
한때 내 심장을 안전하게 만들었던 낮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였다.
"예은이는 날 믿어. 그리고 너도 믿고."
"하지만 이건 언니 필생의 역작이잖아, 오빠. 다들 아는데. 기획사에서 누가 문제 삼으면 어떡해?"
"그럴 일 없어."
그의 목소리에 날카로운 칼날이 섰다.
"최종 마스터 음원만 있으면 돼. 일단 손에 넣으면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게. 이 노래가 네게서 나왔다는 걸 확실히 알려줄게. 이게 네가 뱅가드 어워드를 탈 유일한 방법이야, 예리야. 이번이 단 한 번뿐인 기회라고."
내 유일한 친구이자 사운드 엔지니어인 아라가 한 시간 전에 문자를 보냈었다.
"지훈 씨랑 예리 씨 와 있어. 좀 이상해. 자꾸 '우리의 메아리' 최종 믹스본 달라고 하는데. 네가 승인했다면서. 진짜야?"
아니. 그런 적 없다.
나는 가는 중이라고 답했다.
뭐가 그리 급한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언니는 너무... 멘탈이 약하잖아."
예리가 이상하고 역겨운 동정심이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재능은 있는 거 알아. 근데 압박감을 못 견디잖아. 가족을 위해서 이게 최선이야. 엄마 아빠도 그렇게 생각하시고."
"바로 그거야."
지훈이 다시 부드럽고 달래는 목소리로 동의했다.
"예은이는 엔진이고, 스타는 너야, 예리야. 넌 얼굴도 되고, 매력도 있잖아. 언니는 원래 스포트라이트 체질이 아니야. 이 노래는 네가 발표하고, 언니는 동생을 도왔다는 만족감을 느끼겠지. 금방 잊을 거야."
그는 내 음악을 발판으로 만들었다.
도구로.
동생도, 파트너도, 3개월 뒤 결혼할 여자도 아닌.
그들의 음모가 파도처럼 덮쳐오지 않았다.
마치 맹독처럼 스며들었다.
천천히, 뱃속에서부터 시작해 혈관을 타고 퍼져나가 온몸이 얼음덩어리처럼 굳어버리는 독이었다.
나는 어둑한 복도에 서 있었다.
손은 여전히 차가운 금속 문틀에 얹혀 있었다.
손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문틀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산산조각 난 세상 속에서 나를 지탱해 주는 작은 고통이었다.
가슴이 아프지 않았다.
그저... 텅 비어 있었다.
심장이 있어야 할 자리가 움푹 파인 것 같았다.
나는 그를 놀라게 해주려고 여기에 왔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와 우리 아파트 근처 작은 빵집의 페이스트리를 사 들고.
우리의 커리어를 함께 정의해 줄 거라 믿었던 노래의 완성을 축하하기 위한 작은 제스처였다.
커피는 이제 내 손안에서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바깥의 가을 공기는 상쾌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한기는 날씨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이 통풍 잘되는 건물에서 예리가 감기에 걸릴까 걱정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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