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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붓동생 장예솔이 나를 '언니'라고 부른 지 10년째 되는 날, 그 애는 내 남편 한은태와 함께 우리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내가 3개월 시한부라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특히 그에게는.
그를 위해 10년간 모든 것을 바친 대가는 남편과 의붓동생의 배신이었다. 두 사람은 SNS에 침대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우리 아기가 생겼다'는 글을 올리며 나를 조롱했다.
심장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착한 아내로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그들이 뻔뻔하게 내 집으로 들이닥쳤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족인 것처럼.
나는 그들을 향해 차갑게 웃으며 이혼 서류를 던졌다.
"나가. 이 집과 회사의 진짜 주인은 나야. 우린 혼인신고조차 하지 않았거든."
제1화
장예솔이 나를 '언니'라고 부른 지 10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 애가 한은태와 함께 우리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내가 죽어간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한은태가 오늘 집에 일찍 온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내 심장이 다시 뛰는 것을 느꼈다. 쿵, 쿵, 쿵. 마치 10년 전 처음 그를 봤을 때처럼 말이다. 보육원 출신인 나를 거둬준 한 씨 가문의 회장이자 그의 조부 덕분에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 그에게 보답하기 위해 나는 지난 10년간 그의 아들, 한은태의 사업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나는 식탁 위로 따뜻한 음식을 펼쳐 놓았다. 그의 퇴근 시간에 맞춰 정성껏 준비한 음식들이었다. 평소 그가 좋아하던 갈비찜과 내가 직접 담근 김치를 꺼냈다. 와인 잔 두 개를 나란히 놓으며, 나는 오늘만큼은 그가 일찍 와주기를 바랐다. 오랜만에 함께 식사를 하며 평범한 부부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기다림은 늘 그랬듯 길고 공허했다.
밤 9시가 넘도록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식탁 위에 놓인 음식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스마트폰을 들어 그의 번호를 눌렀지만, 망설였다. 그가 바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사업은 늘 내게 최우선이었다.
결국 전화를 걸지 못했다. 대신 그의 비서에게 연락을 했다.
"한 대표님, 아직 회사에 계신가요?"
비서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대표님은 오늘 일정이 일찍 끝나셔서 퇴근하셨습니다."
나는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퇴근했다고? 그럼 왜 집에 오지 않은 걸까.
"어디에 가셨는지 아시나요?" 내가 애써 침착하게 물었다.
"그건… 개인적인 일정이라서 제가 알지 못합니다."
비서의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 보였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차가운 공기가 집 안을 맴도는 것 같았다.
식탁 위에 놓인 따뜻한 음식은 이제 미지근해졌다. 내 마음도 그랬다. 지난 10년간 그를 위해 바쳤던 내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장예솔의 SNS를 열었다. 그 애는 늘 나와 한은태의 일거수일투족을 염탐하듯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 분 전에 올라온 사진이 보였다. 고급 레스토랑의 내부가 찍힌 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사진 속에는… 한은태와 장예솔이 다정하게 마주 앉아 있었다.
장예솔의 얼굴에는 경멸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마치 나를 조롱하듯, 한은태의 손을 잡고 있었다. 사진 아래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오랜만에 오빠랑 행복한 저녁 데이트. 역시 오빠가 해주는 요리는 최고야! 우리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하자.'
한은태는 장예솔에게 직접 요리를 해준다고? 나와 결혼한 지 3년이 되도록, 그는 내게 단 한 번도 직접 요리를 해준 적이 없었다. 늘 나만 그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그를 기다렸다.
내 손이 떨렸다. 사진 속 한은태의 눈빛은 장예솔을 향해 있었다. 그 눈빛은 내가 10년 동안 그에게서 갈구했던 따뜻한 시선이었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장예솔은 늘 이런 식이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부러워하고, 빼앗으려 했다. 언니라고 부르면서도, 늘 내 뒤에서 칼을 꽂으려 했다.
나는 기억했다. 몇 달 전, 한은태와 나의 결혼식이 있기 전이었다. 장예솔은 해외 유학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를 찾아왔다.
"언니, 결혼 축하해. 하지만… 오빠는 원래 내 남자였잖아? 언니가 뺏어간 거 아니야?"
그 애는 뻔뻔하게도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했다. 그때 나는 그저 장예솔이 질투심에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어리고 철없는 동생의 투정이라고 여겼다.
장예솔은 나를 언니라고 불렀지만, 우리 사이에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 내가 보육원에서 한 씨 가문의 후원을 받게 된 후, 내 아버지가 재혼하며 데려온 딸이었다. 어려서부터 장예솔은 늘 나를 질투했다. 내가 받은 모든 사랑과 관심을 빼앗으려 했다.
오늘처럼 한은태가 외박하는 날이면, 장예솔은 꼭 내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오빠가 또 나랑 같이 있다고 하네. 언니는 괜찮아? 혼자 있어도?"
그 애는 낄낄거리며 나를 조롱했다. 나는 그저 한숨을 쉬었다.
장예솔은 유학 시절, 외국인 남자와 결혼해 자식까지 있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이 순탄치 않았고, 결국 이혼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한은태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한은태는 그런 장예솔에게 쉽게 넘어갔다. 그는 늘 우유부단하고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한은태의 마음속에는 늘 장예솔이 있었다는 것을.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도, 그의 마음은 단 한 번도 내 것이 아니었다.
신혼 첫날밤, 그는 만취한 채 내 이름을 부르며 내 옆에 누웠다. 나는 그저 그를 사랑했기에, 그 순간마저도 행복하다고 믿으려 했다. 그의 숨결에서 다른 여자의 향기가 나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입에서 다른 여자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들으면서도, 나는 그저 그를 안았다. 평생을 '장청하'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그와 함께하고 싶었다.
나는 차가운 식은 갈비찜을 한 조각 집어 입에 넣었다. 씹을수록 비릿한 맛이 났다. 억지로 삼켰다. 차가운 음식이 목구멍을 넘어갈 때마다 내 속은 더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사모님, 건강이 너무 안 좋으시니 당분간 휴식을 취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며칠 전 주치의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는 내게 불치병 진단을 내렸다.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한 희귀병이었다. 길어야 3개월이라고 했다. 나는 그 사실을 한은태에게 말할 수 없었다. 아니, 말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한은태의 성공을 위해 내 몸을 돌보지 않았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끼니도 거르기 일쑤였다. 그의 회사를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 IT 개발자로서 핵심 기술을 개발했고, 회사의 성공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나는 더 이상 그를 위해 나를 희생하고 싶지 않았다. 그를 위해 죽어가는 것도 싫었다. 남은 3개월, 나를 위해 살고 싶었다.
나는 접시를 치우기 시작했다. 주방이 깨끗해지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침실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가 언제 돌아올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오늘 밤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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