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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나는 남편 강지혁에게 모든 걸 바쳤다. 그가 MBA를 딸 수 있도록 세 가지 일을 했고, 그의 스타트업 자금을 대기 위해 할머니의 유품인 로켓 펜던트까지 팔았다. 이제 그의 회사 IPO가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그는 ‘일시적인 사업상 조치’라며 열일곱 번째 이혼 서류에 서명하라고 나를 윽박지르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TV에서 그를 보았다. 다른 여자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였다. 그의 수석 투자자, 윤세라였다. 그는 그녀를 ‘일생의 사랑’이라 부르며,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을 때 나를 믿어준 사람”이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단 한 문장으로 내 존재 전체를 송두리째 지워버렸다.
그의 잔혹함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쇼핑몰에서 그의 경호원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내가 의식을 잃자, 그는 나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부인했다. 지독한 폐소공포증이 있는 걸 알면서도 나를 어두운 지하실에 가두고, 공황발작을 일으키는 나를 혼자 내버려 뒀다.
하지만 결정타는 납치 사건 때였다. 납치범이 나와 윤세라 둘 중 한 명만 구할 수 있다고 했을 때, 강지혁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선택했다. 소중한 거래를 지키기 위해, 묶인 의자에 묶여 고문당하는 나를 버려두고 그녀를 구했다. 두 번째로 병원 침대에 누워 산산조각 나고 버림받은 나는, 마침내 5년 동안 하지 않았던 전화를 걸었다.
“혜원 이모…” 나는 목이 메어 겨우 말했다. “저… 이모 댁에 가도 될까요?”
뉴욕에서 가장 두려운 변호사로 통하는 이모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물론이지, 아가. 내 전용기 대기시켜 놨어. 그리고 아린아? 무슨 일이든, 우리가 해결할 거야.”
제1화
서아린 POV:
열일곱 번째였다. 강지혁의 변호사가 우리 집 주방 식탁 너머로 이혼 서류를 밀어 넣은 것이. 잘 닦인 오크 식탁의 감촉이 팔뚝 아래로 차갑게 느껴졌다. 끓어오르는 내 굴욕감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열일곱 번.
지난 6개월 동안 내가 강지혁의 인생에서 법적으로 나를 지워달라는 요구를 받은 횟수였다.
첫 번째에는 목이 쉴 때까지 소리 지르며 울부짖었다. 다섯 번째에는 분노로 손을 떨며 각 페이지를 색종이 조각처럼 잘게 찢어버렸다. 그 분노는 낯설고 무서웠다. 열 번째에는 깨진 접시 조각을 내 손목에 대고, 그의 변호사에게 싸늘하게 속삭였다. 내 서명을 받고 싶으면 차갑게 식은 내 손가락에서 펜을 뜯어내야 할 거라고.
박 변호사라는 이름의 그 남자는, 겨울 하늘처럼 잿빛이고 생기 없는 눈을 하고 있었다. 그날 그는 창백해져서 집에서 뒷걸음질 쳐 나갔다.
물론 그는 강지혁에게 전화했다. 강지혁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달려와 몇 시간 동안 나를 안아주었다. 내 머리카락에 대고 약속을 속삭였다. 이 모든 게 일시적인 것이고, 투자자들을 위한 형식일 뿐이며, 나는 언제나 그의 아내, 유일한 아내일 거라고.
나는 그를 믿었다. 언제나 그를 믿었다.
하지만 지금, 열일곱 번째 똑같은 서류를 노려보자, 뼈 속 깊이 사무치는 공허한 탈진감이 밀려왔다. 지쳤다. 싸우고, 소리 지르고, 믿는 것에 너무나 지쳤다.
“서아린 씨.” 박 변호사가 나를 달래려는 듯 낮고 능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이건 전략적인 조치입니다. IPO 전에 이사회를 안심시키기 위한 일시적인 해소일 뿐입니다. 당신과 강지혁 대표님 사이에는 실제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내 시선은 그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거실 벽에 걸린 텔레비전에 고정되어 있었다. 소리는 음소거 상태였지만, 화면은 수정처럼 맑았다. 강지혁, 내 남편 강지혁이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그의 미소는 주위에서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만큼이나 밝고 눈부셨다. 그는 무대 위에 서서 다른 여자의 허리를 소유욕 넘치게 감싸고 있었다.
윤세라.
그의 회사 투자 라운드를 이끄는 회사의 명석하고 실용적인 벤처 캐피털리스트. 언론이 ‘판교의 새로운 파워 커플’의 다른 한쪽이라고 부르는 여자. 그녀의 미소는 우아했고, 자세는 완벽했다. 그녀는 그곳, 반짝이는 조명 아래, 세상이 자수성가한 천재라고 칭송하는 남자 옆에 속한 사람이었다.
“회사가 안정되자마자 대표님은 당신과 재혼할 겁니다.” 박 변호사가 내 귓가에 거슬리는 소음처럼 계속 지껄였다. “이건 그냥… 비즈니스입니다. 윤세라 씨 집안의 영향력은 막강합니다. 두 사람의 공개적인 관계는 IPO 성공을 보장하는 수표나 마찬가지죠.”
보증수표. 나는 위험 요소였다. 그의 가난했던 과거에서 온 비밀 아내, 그가 필사적으로 잊고 싶어 하는 삶의 유물.
이런 말들을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저 소리일 뿐, 나를 관리하고, 내가 도운 삶의 그늘 속에서 조용하고 순종적으로 만들려는 텅 빈 공기일 뿐이었다.
나는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내 이름, 서아린, 이 빈칸 옆에 인쇄되어 있었다. 그의 이름, 강지혁, 은 이미 서명되어 있었다. 그의 익숙하고 야심 찬 필체는 그의 효율성을 증명했다.
“좋아요.” 내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 조용하고 감정이 없어서, 순간 내가 소리 내어 말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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