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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을 함께한 내 남편, 강지혁이 나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은 유서였다.
나를 위한 유서는 아니었다. 그의 의붓여동생이자 우리 결혼 생활을 처음부터 끝까지 좀먹어 온 여자, 백하린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제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었고, 마지막 숨결과 함께 우리의 모든 것, 내가 평생을 바쳐 이룩한 IT 제국을 통째로 그 여자와 그 가족에게 넘겨주었다.
언제나 그 여자였다. 강지혁이 또 다른 위기를 조작해 낸 백하린에게 달려가는 동안, 고장 난 차 안에서 우리 아이가 얼어 죽어갈 때도 그 원인은 백하린이었다.
내 모든 삶은 그 여자와의 전쟁이었고, 나는 이미 패배한 전쟁이었다.
나는 모든 기력이 소진되어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십 대 소녀가 되어 있었다. 내가 있던 보육원, 부유한 태강그룹 일가가 위탁할 아이를 고르러 왔던 바로 그날로 돌아와 있었다.
방 건너편에서, 익숙하고 고통에 찬 눈을 한 소년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강지혁.
그 역시 나만큼이나 경악한 표정이었다.
“은하야.”
그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 모양으로만 속삭였다.
“미안해. 이번엔 내가 꼭 구해줄게. 약속해.”
씁쓸한 실소가 터져 나올 뻔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나를 구하겠다고 약속했을 때, 우리 아들은 차디찬 관 속에 누워 있었다.
제1화
내 남편, 강지혁이 마지막으로 내게 남긴 것은 유서 한 장이었다.
수신인은 내가 아니었다. 그의 의붓여동생, 지난 20년간의 끔찍했던 결혼 생활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여자, 백하린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하린아, 미안하다. 널 지켜주지 못했어. 내 모든 것을 너와 네 가족에게 남긴다. 나를 용서해다오.”
그의 유려한 필체가 그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아직 화약 냄새가 가시지 않은 차갑고 정적인 사무실에 서 있었다. 그는 제 머리에 총알을 박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다른 여자를 생각했다. 모든 것, 내가 설계하고 내 인생을 바쳐 이룩한 우리의 IT 제국은 이제 그 여자의 것이 되었다.
언제나 그 여자였다. 모든 위기는 백하린의 눈물, 백하린의 필요, 백하린이 만들어 낸 거짓 드라마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위협받고 있다는 거짓말에 강지혁이 달려가는 바람에, 외딴길 고장 난 차 안에서 우리 아이가 추위에 떨다 죽어갈 때도 원인은 백하린이었다.
내 모든 삶은 그 여자와의 전쟁이었고, 나는 방금 그 전쟁에서 완벽하게 패배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극심한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슬픔은 물리적인 무게가 되어 폐를 짓눌러 숨을 앗아갔다. 그때, 가슴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지고 눈앞이 번쩍이더니, 세상이 녹아내렸다.
소독약과 값싼 수프 냄새가 코를 찔렀다. 눈을 떴다. 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방 안, 울퉁불퉁한 매트리스 위에 누워 있었다. 벽은 우울한 베이지색이었고 모서리 페인트는 벗겨져 있었다. 심장이 갈비뼈를 미친 듯이 두드렸다. 나는 이곳을 알았다. 새희망 보육원이었다. 내 손은 작았고, 몸은 가늘고 낯설었다. 나는 다시 십 대가 되어 있었다.
흐릿한 정신 속으로 목소리 하나가 파고들었다.
“서은하, 일어나! 태강그룹 사람들이 왔어!”
나는 벌떡 일어났다. 오늘. 바로 오늘이었다. 부유한 태강그룹 일가가 위탁할 아이를 고르러 오는 날. 내 인생이 강지혁과 얽히기 시작한 바로 그날.
방 건너편, 익숙한 검은 머리카락과 고통에 찬 눈을 한 소년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강지혁. 그는 나만큼이나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은하야.”
그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 모양으로만 속삭였다.
“미안해. 이번엔 내가 꼭 구해줄게. 약속해.”
구해줘? 헛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나를 구하겠다고 약속했을 때, 우리 아들은 차디찬 관 속에 누워 있었다.
첫 번째 삶에서, 나는 이 지긋지긋한 곳을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야망 있고 똑똑했던 나는 태강그룹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생각했다. 나는 몇 주 동안 그들에 대해 조사하며 그들의 관심사, 성격, 어떤 아이를 원하는지 파악했다. 완벽한 자기소개를 준비했고, 낡았지만 가장 깨끗한 옷을 입었다. 나는 그들의 완벽한 선택이 되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그리고 나는 선택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강지혁이 나타났다. 훌쩍거리며 불쌍한 표정을 짓는 여자애를 뒤에 끌고서. 백하린이었다.
“이 아이는 누구보다 가정이 필요해요.”
그는 언제나 그녀에게 향했던 그릇된 연민과 고결함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부모에게 선언했다.
“다른 애들이 얘를 괴롭혀요.”
백하린은 기가 막힌 타이밍에 흐느끼며 그의 등 뒤에 숨어 나에 대한 거짓말을 속삭였다.
“은하가 무서워요. 넌 행복해질 자격이 없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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