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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강태준이 어떤 여자와 다정하게 호텔을 드나드는 걸 봤다고 했지만, 윤서진은 그저 친구가 잘못 본 거라며 웃어넘겼다.
강태준이 바람을 피울 리가 없었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사이로, 무려 13년을 함께해 왔고 그만큼 감정도 깊었다.
지난달 생일 때만 해도 강태준은 해성에서 가장 큰 옥외 전광판을 통째로 빌려 온 세상에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성대하게 축하해 주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이미 아이를 갖기 위해 임신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 윤서진은 마침내 임신 준비 검사 합격 결과지를 받아 들었다. 가장 먼저 이 기쁜 소식을 강태준과 나누기 위해 곧장 회사로 달려왔다.
최상층으로 바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한 사람의 그림자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오셨어요? 예약 없이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눈앞의 여자는 노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사랑스럽고 발랄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목구비 어딘가가 묘하게 낯익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윤서진의 앞을 막아섰고, 살짝 제멋대로인 기색이 묻어났다.
"지현 씨, 이분은 윤 대표님이자 사모님이세요. 어서 사모님께 사과드리세요."
강태준의 비서인 김현우가 재빨리 다가와 여자를 떼어놓자, 여자는 잠시 놀란 듯하더니 이내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윤 대표님, 안녕하세요. 저는 이지현이라고 합니다. 강 대표님께서 후원해 주시는 대학생인데, 감사하게도 대표님 곁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주셨어요. 방금은 방문 예약 안내를 받지 못해서 규정대로 처리하다 보니 대표님을 막게 됐는데,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녀는 무고한 눈빛을 지었지만, 말 속에는 미묘한 뉘앙스가 숨어 있었다.
윤서진은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녀의 손에 시선이 멎었다. "네일 컬러가 예쁘네요."
차분한 블루 톤에 잔잔한 펄이 들어간 색이었다. 어제 강태준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에 남아 있던 색과 완전히 같았다.
어젯밤 함께 저녁을 준비하던 중 그걸 보고 물었을 때, 그는 잉크가 묻은 거라며 아무렇지 않게 넘겼고,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지현은 황급히 두 손을 등 뒤로 숨기며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그 순간, 윤서진은 그녀의 귓가 아래 새하얀 목덜미에 아주 진한 키스 자국이 남아 있는 것을 보았다. 가장자리에는 이 자국으로 인한 멍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연애한 지 4년이라, 윤서진은 강태준의 작은 버릇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수많은 밤, 그는 감정이 격해질 때마다 그녀의 귓가에 깊게 입을 맞추고, 욕망을 억누르며 참기 힘들다는 듯 낮게 속삭였다.
"여보, 도대체 언제쯤 준비되는 거야? 정말 원해… 이제 진짜 못 참겠어."
윤서진은 지난 몇 년간 몸이 많이 상해 있었고, 자궁에도 큰 손상을 입은 적이 있어 당장 임신이 어려운 상태였다.
게다가 강태준은 콘돔 알레르기가 있었고, 일까지 바빴기 때문에 두 사람은 결혼한 지 2년이 지났지만 끝까지 관계를 이어 가지 못한 채 지내왔다.
매번 강태준이 욕구를 참으며 찬물로 샤워하러 갈 때마다, 윤서진은 미안하면서도 고맙고, 동시에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그래서 강태준이 아이를 갖자고 제안하며 그녀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몸조리에 전념하라고 했을 때, 윤서진은 아무런 불만 없이 받아들였다.
지난 6개월 동안 윤서진은 쓴 약을 마시며 몸을 추스르면서도, 마음속에는 달콤한 기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밤, 두 사람의 첫날밤이었다. 그녀는 평소라면 절대 입지 않았을 란제리까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미리 준비해 두었다.
하지만 강태준은 그녀를 위해 참고 있었던 게 아니라, 이미 밖에서 다른 방법으로 욕구를 풀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에게서 들은 그 말, 그리고 그에 대한 믿음이 마치 따귀처럼 윤서진의 뺨을 세게 때리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그 자리에 굳어버린 듯 서 있었다.
"윤 대표님, 강 대표님께서는 지금 백 도련님과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십니다. 어서 들어가 보시죠."
윤서진이 정신을 차렸을 때, 김현우는 이미 못마땅한 표정의 이지현을 끌고 자리를 떠난 뒤였다.
윤서진은 한 걸음씩 대표 사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사무실 문을 밀어 열자, 문틈으로 말소리가 새어 나왔다.
"대역으로 쓰는 건 그렇다 쳐도, 옆에 두고 지내는 건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서진이한테 들켜서 문제 생기면 어쩌려고."
백준서의 목소리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윤서진의 발은 바닥에 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온몸에 한기가 퍼지며 이가 부딪혀 달달 떨렸다.
강태준이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심지어 자신의 친 오빠까지 알고 있었다.
"걱정 마, 준서 형. 진이는 나 완전히 믿어. 날 그렇게 사랑하고, 또 순해서 나 없으면 못 살아. 문제 될 일 같은 건 절대 없을 거야. 게다가 진이가 지금은 집에서 임신 준비에만 신경 쓰느라 다른 데 신경 쓸 겨를도 없어."
강태준의 목소리는 낮고 매력적이었지만, 그 말에는 자신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 말투는 마치 독침처럼 문을 뚫고 윤서진의 심장에 날아와 박혔고, 한 마디 한 마디가 피를 흘리게 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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