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8471/coverorgin.jpg?v=4853de19ab276c01419e432ed07e6d1c&imageMogr2/format/webp)
첫 만남
침실 공기가 섬뜩할 만큼 차가웠다. 김아영은 눈을 뜨기도 전에 그 사실을 알아차렸는데, 그건 에어컨 온도를 20도로 맞춰 놓은 탓이 아니었다. 마치 죽음을 경험한 그녀의 뼛속에서부터 서늘한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킹사이즈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집트산 면 시트가 식은땀으로 축축한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심장이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미친 듯이 뛰었다. 쿵, 쿵, 쿵. 그것은 생존의 리듬이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피부는 따뜻했고, 살아있다는 감각이 생생했다. 그녀는 더 이상 병원 침대에 누워 있지 않았다. 서준이 로비에서 그녀의 사망 기자회견을 여는 동안, 그녀는 더 이상 병상에 누워 모니터의 수평선을 듣고 있지 않았다.
김아영은 손을 내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은 노골적일 만큼 현대적이었다. 크롬 장식, 검은색 가죽 가구, 그리고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들어오는 통유리창까지. 그곳은 펜트하우스의 탈을 쓴 금빛 새장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협탁 위 디지털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7시. 10월 14일.
그 날짜가 물리적인 충격처럼 그녀를 덮쳤다. 10월 14일. 서준이 뉴욕 증권 거래소에서 개장 벨을 울리기로 한 날. 서준 그룹이 '혁신적인' 새 알고리즘을 발표할 날. 바로 서준이 인맥 관리를 위해 밖을 나도는 동안, 그녀가 세탁실에 처박혀 낡은 노트북으로 밤새워 완성한 그 알고리즘 말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오늘이 바로 그가 그녀를 버리는 날이라는 사실이었다.
묵직한 참나무 문이 요란하게 열리며 화장대 위 크리스털 꽃병이 가늘게 떨렸다.
서준이 방으로 들어섰다. 그는 이미 맞춤 제작한 차콜색 정장을 빼입고 머리까지 완벽하게 손질한 상태였다. 자신이 표지를 장식했던 모든 잡지 속 모습처럼 잘생기고, 날카로우며, 속이 텅 빈 것처럼 보였다. 그는 다이아몬드 커프스를 매만지며 방 건너편 전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에 온전히 심취해 있었다.
"일어났어?" 그의 목소리는 무심했고, 아무렇게나 툭 던지는 말투였다. 그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그녀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 그녀는 가끔 손질이 필요한 가구와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침대로 다가와 두툼한 서류 뭉치를 이불 위로 던졌다. 서류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그녀의 다리 위로 미끄러졌다.
"사인해." 서준은 차갑고 참을성 없는 눈으로 그녀를 쏘아보며 명령했다. "변호사들이 오늘 아침에 서류를 제출하면, 장 마감 후 인터뷰에서 내가 싱글이라는 걸 발표할 수 있다고 했어. 투자자들에게 더 좋은 인상을 줄 수 있겠지. '매력적인 독신남'이라는 서사가 요즘 먹히거든."
김아영은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이혼 합의서. 굵은 글씨가 그녀를 노려보는 듯했다.
지난 생에서, 이 순간은 그녀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녀는 울고, 애원하고, 그의 팔에 매달려 무엇을 잘못했는지 물으며 더 나은 아내가 되겠다고, 더 조용히 있겠다고, 그가 원하는 대로 뭐든지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를 사랑했기에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가 없으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짓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김아영은 손을 뻗어 서류를 만졌다. 손끝에 건조하고 거친 종이의 감촉이 전해졌다. 눈시울이 뜨거워지지도, 목이 메어오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저… 후련했다.
그녀는 서준을 올려다보았다. 3년 만에 처음으로 그를 똑바로 마주했다. 그는 업계의 거물이 아니었다. 그저 그녀가 벽돌 하나하나, 코드 한 줄 한 줄로 쌓아 올린 받침대 위에 서 있는 평범한 남자일 뿐이었다.
"왜 아무 말이 없어?" 서준이 입술을 비틀었다. "눈물은 아껴둬. 우리 둘 다 이 순간이 올 줄 알았잖아. 넌 재미있는 프로젝트였지만, 솔직히 말해서 넌 그냥 트레일러 파크 출신이 펜트하우스에서 공주 놀이하는 것뿐이었어. 우리 둘 다에게 창피한 일이라고."
트레일러 파크 소녀. 그것은 그가 가장 즐겨 쓰는 무기였다. 그는 그녀의 보잘것없는 출신을 들먹이며 그녀를 초라하게 만들었고, 자신의 관심 한 조각에도 감사하게 길들였다.
김아영은 침대에서 다리를 내려 일어섰다. 부드러운 카펫에 발이 닿았다.
그녀의 자세가 변했다. 순종적인 아내의 구부정한 어깨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녀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김아영은 서준을 지나쳐 방 한편에 놓인 마호가니 책상으로 성큼성큼 향했다. 어제까지는 찾아볼 수 없었던 유연한 우아함이 그녀의 몸짓에 깃들어 있었다. 아니, 죽음이 그녀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일깨워 주기 전까지는 그런 우아함을 가졌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았다.
서준은 그녀의 침묵에 순간 당황했다. 그는 그녀가 더는 '브랜드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연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의 무반응에 연습해 둔 대사가 엉망이 된 기분이었다.
"내 말 들었어?" 그는 그녀의 앞을 가로막으며 쏘아붙였다. "서류에 사인하라고. 나 시간 없어. 차가 아래서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김아영은 멈추지 않았다. 움찔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를 복도에 놓인 짐짝처럼 사소한 장애물인 양 가볍게 비켜섰다.
책상에 도착한 그녀는 묵직한 만년필을 집어 들었다. 몽블랑. 첫 번째 결혼기념일에 그녀가 그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그는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너무 무겁다는 이유에서였다.
김아영은 만년필을 손에 쥐었다. 완벽한 무게감이었다. 균형 잡힌, 치명적인 무게.
그녀는 서명란을 내려다보았다. 서준. 그의 서명은 날카롭고 공격적이었다. 그 옆에는 김아영의 서명을 위한 빈칸이 있었다.
기억들이 눈앞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가 잠든 동안 밤새워 시장 동향을 분석하던 그녀.
그녀가 짠 코드가 그의 첫 스타트업을 파산에서 구해냈다.
회의 직전 그의 귓가에 속삭여준 그림자 전략은 훗날 그의 위대한 아이디어로 둔갑했다.
/1/108237/coverorgin.jpg?v=10c93e20fcc649b76227ae13acf3d441&imageMogr2/format/webp)
/1/105545/coverorgin.jpg?v=a3dcc67cab80f304fb1f5a35d40cd3cc&imageMogr2/format/webp)
/0/41400/coverorgin.jpg?v=20250117160203&imageMogr2/format/webp)
/1/100787/coverorgin.jpg?v=4aa8ea58b5d239f75530d9c62f6da57e&imageMogr2/format/webp)
/1/101401/coverorgin.jpg?v=2128ea10fa00468d7567d8694c0578d1&imageMogr2/format/webp)
/0/93686/coverorgin.jpg?v=494c8e217ab5bb2b44bfcdde77f42fbc&imageMogr2/format/webp)
/0/89091/coverorgin.jpg?v=8e198c0110c6a8dffac6400411f2fcc2&imageMogr2/format/webp)
/0/90084/coverorgin.jpg?v=d49d6b7ad9ebe19c7a2bff8afaef673c&imageMogr2/format/webp)
/0/93647/coverorgin.jpg?v=8e7722ea153a57fa525b5bc56b4c359a&imageMogr2/format/webp)
/0/77560/coverorgin.jpg?v=48febcc2590c6016de40ae2ba0ebd3a4&imageMogr2/format/webp)
/1/100975/coverorgin.jpg?v=4627a856d96323b16f52a00bf3b2e1e2&imageMogr2/format/webp)
/1/106561/coverorgin.jpg?v=a653df54f5793f9b0bed42654b491166&imageMogr2/format/webp)
/1/105542/coverorgin.jpg?v=da5c260cb70a660c54951846ff7bbd63&imageMogr2/format/webp)
/0/90542/coverorgin.jpg?v=0976231e5063fa4b9dc795a47ecd0c08&imageMogr2/format/webp)
/0/90102/coverorgin.jpg?v=da57b6c8e01a8717fa2da804c4f0edd4&imageMogr2/format/webp)
/0/90696/coverorgin.jpg?v=311167e2629169341dc553865f062bcc&imageMogr2/format/webp)
/0/64460/coverorgin.jpg?v=a6b2cf324f3edcc3e709ee95961c1ac4&imageMogr2/format/webp)
/1/106568/coverorgin.jpg?v=91eaf8aae1c89ea5b92a99311922b71c&imageMogr2/format/web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