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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이현. 정치 명문가의 반항적인 언론인이었다.
나의 유일한 탈출구는 서지혁과의 은밀하고 열정적인 관계였다. 그는 얼음과 논리로 조각된 듯한 막강한 힘을 가진 CEO였다.
그는 나를 그의 ‘아름다운 재앙’이라 불렀다. 그의 펜트하우스 벽 안에 갇힌 폭풍우.
하지만 우리의 관계는 거짓 위에 세워져 있었다.
나는 그가 단지 다른 여자, 윤채아를 위해 나를 ‘길들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채아는 아버지의 비서실장의 병약한 딸이었고, 지혁은 그녀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있었다.
그는 공개적으로 나 대신 그녀를 선택했고, 나에게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다정함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는 그녀를 보호하고, 감싸주었다.
내가 포식자에게 궁지에 몰렸을 때, 그는 나를 버리고 그녀에게 달려갔다.
최악의 배신은 그가 나를 감옥에 처넣고 폭행을 사주했을 때였다.
“버릇을 좀 고쳐야지.”
그가 뱀처럼 속삭였다.
마지막 결정타는 교통사고 때였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윤채아의 앞을 가로막았다. 자신의 몸으로 그녀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나를, 충격에 그대로 노출시켰다.
나는 그의 사랑이 아니었다. 기꺼이 희생시킬 수 있는 짐 덩어리일 뿐이었다.
부서진 몸으로 병원 침대에 누워,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나는 그의 아름다운 재앙이 아니라, 그의 멍청이였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했다.
나는 그의 완벽한 세상을 잿더미로 만들었고, 나에게 평화를 약속한 상냥한 재벌 3세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우리 사랑의 재를 뒤로한 채,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제1화
강이현은 모순적인 여자였다.
대중에게 그녀는 정치 명문가 ‘강씨’ 집안의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었다.
그녀의 이름이 실린 기사는 아버지인 강태준 의원에게 끊임없는 불안의 원천이 되는 탐사 보도 전문 기자.
그녀는 명석하고, 반항적이며, 골칫덩어리였다.
어둠 속에서,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차가운 펜트하우스의 정적 속에서,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비밀이었고, 열정이었으며, 서지혁이라는 세상의 네 벽 안에 갇힌 폭풍우였다.
거대 IT 보안 회사 ‘SJ 시스템’의 CEO, 서지혁.
그는 얼음과 논리로 조각된 남자였다. 그의 힘은 통제되었고, 그의 감정은 굳게 잠긴 금고와 같았다.
그는 그녀의 가족이 추구하는 모든 것을 상징하면서도,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였다.
그들의 관계는 격렬하고 절박했으며, 결코 만나서는 안 될 두 세계의 충돌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리고 이제 그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현은 그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른 아침의 빛이 전면 창을 통해 스며들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필요로 하는 한 남자를 파멸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 부패한 노조위원장이 폭로되면 강 의원의 최신 법안은 좌초될 터였다.
좋은 기사였다. 동시에 자신의 가족을 향한 선전포고이기도 했다.
그녀는 그가 옷을 입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부드러운 면 셔츠가 빳빳하게 다려진 정장 셔츠로 바뀌었다.
그 변화는 언제나 순식간이었다. 연인은 사라지고, CEO가 그 자리에 나타났다.
“가지 마.”
조용한 방 안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부드러운 애원처럼 울렸다.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어두운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넥타이를 바로잡을 뿐이었다.
“7시에 이사회 있어.”
“취소해.”
그가 마침내 돌아섰다. 그의 얼굴은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그럴 수 없다는 거 알잖아.”
그 거절은 익숙한 상처였다.
그녀는 그가 서류 가방을 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움직임은 정확하고 군더더기 없었다.
작별의 키스도, 미련이 남은 손길도 없었다. 언제나 그랬다.
“지혁 씨.”
그녀가 다시 한번 불렀다. 절박함이 위 속에서 매듭처럼 조여왔다.
“나중에 얘기해.”
그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그녀는 광활하고 텅 빈 공간에 홀로 남았다.
나중에. 그의 ‘나중에’라는 약속은 결코 실현되지 않는 유령과도 같았다.
방 안의 냉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그녀는 기다리지 않았다. 자신의 휴대폰을 집어 들고 아버지의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단하고 명확했다.
“아버지께 전하세요. 받아들이겠다고.”
전화기 너머에서 순간 충격적인 침묵이 흘렀다.
“그… 해성 그룹과의 제안을 받아들이시겠다는 겁니까?”
“네.”
이현이 텅 빈 눈으로 말했다.
“주해민과의 정략결혼. 하겠어요.”
그 제안은 몇 주 동안이나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은둔형 IT 재벌로부터 막대한 선거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강태준 의원이 설계한 정치적 술수.
그것은 거래였고, 그녀는 상품이었다.
“조건이 하나 있어요.”
그녀가 낮고 위험한 톤으로 덧붙였다.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이현 아가씨. 의원님께서 기뻐하실 겁니다.”
“오늘 발표해 주세요. 오늘 아침에요. 앞으로 한 시간 안에 보도자료가 나가길 원해요.”
“물론입니다.”
남자가 기쁨에 겨워 더듬거렸다.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결정의 무게가 수의처럼 그녀를 덮었다.
그녀는 방금 하나의 새장을 다른 새장과 맞바꾼 것이었다.
짐을 챙기던 그녀의 시선이 침대 협탁 위에 놓인 두 번째 휴대폰에 꽂혔다.
서지혁의 개인 휴대폰. 그는 절대 이걸 두고 다니지 않았다.
차가운 불안감이 그녀를 덮쳤다. 그녀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화면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윤채아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메시지는 단순하고, 기만적으로 다정했다.
“오빠, 괜찮아? 그 여자 오빠랑 같이 있었다며. 힘들게 하진 않았어?”
윤채아. 아버지 비서실장의 연약하고 사슴 같은 눈을 한 딸.
서지혁이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여자.
몇 년 전, 채아는 지혁의 커리어를 시작도 전에 끝장낼 뻔했던 산업 스파이 사건의 죄를 대신 뒤집어썼다.
그 이후로 그는 줄곧 그녀에게 빚을 졌고, 채아는 그 사실을 외과수술처럼 정밀하게 이용했다.
이현의 머릿속에 한 달 전의 일이 스쳐 지나갔다.
정보원의 경호원들에게 얻어맞고 멍투성이가 되어 지혁의 문 앞에 나타났을 때.
그는 차가운 논리의 가면을 쓴 채 그녀를 바라보며 다음부턴 조심하라고만 했다.
아프냐고 묻지도 않았다.
하지만 윤채아에게는 언제나 걱정뿐이었다. 언제나 부드러운 손길뿐이었다.
입안에 쓴맛이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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