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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혁과 결혼하기로 한 바로 그날, 그는 공공연하게 내가 제 형의 여자라고 선언했다.
그는 결혼식을 막판에 취소했다. 그의 전 여자친구인 윤소희가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고, 두 사람이 한창 뜨겁게 사랑하던 시절로 기억이 돌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나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그녀의 헌신적인 연인 역할을 자처했다.
한 달 동안, 나는 권씨 가문의 저택에서 ‘손님’으로 지내야만 했다. 그가 그녀에게 애정을 쏟고 과거를 재건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러면서도 그는 그녀가 회복되는 대로 나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다 나는 진실을 엿들었다. 권지혁은 그녀의 기억상실증 치료제를 자신의 금고에 잠가두고 있었다.
그는 어쩔 수 없었던 게 아니었다. 그는 인생의 사랑과 두 번째 기회를 만끽하고, 음미하고 있었다. 내가 자신의 소유물이며, 그가 끝날 때까지 그저 기다릴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부하들에게 우리 둘 다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형의 이름을 이용해 나를 모욕했다. 좋다. 나는 그의 형의 이름을 이용해 그를 파멸시킬 것이다.
나는 이 가문의 진정한 권력자, 권도형 회장의 집무실로 걸어 들어갔다. “당신 동생이 제가 회장님의 파트너라고 하더군요.”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걸 현실로 만들죠. 저와 결혼해주세요.”
제1화
서이현 POV:
권지혁과 결혼하기로 한 바로 그날, 그는 공공연하게 내가 제 형의 여자라고 선언했다. 그의 진정한 사랑이 병상에 부서진 채 누워 오직 그만을 기억하는 동안, 온 가문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을 만큼만 나지막이 속삭인 편리한 거짓말이었다.
예식장의 무거운 참나무 문이 닫혔다. 문 저편에서 하객들이 웅성거렸고, 그들의 속삭임은 나무를 뚫고 둔탁한 소음처럼 들려왔다. 웨딩드레스는 레이스와 실크로 만들어진 감옥처럼 느껴졌다.
한 시간 전만 해도 나는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이제는 뼛속까지 섬뜩한 공포가 스며들고 있었다.
소식은 총알처럼 날아들었다. 교통사고. 권지혁의 전 여자친구이자, 그가 단 한 번도 제대로 잊지 못했던 윤소희가 위독한 상태라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그녀의 기억은 5년 전, 그녀와 권지혁이 깊이 사랑했던 시절로 돌아가 버렸다.
그는 신부인 나에 대한 생각은 단 한순간도 없이 그녀의 곁으로 달려갔다.
마침내 그가 돌아왔을 때, 그의 얼굴은 필사적으로 감정을 억누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내 앞에 섰지만, 내 눈을 보지 않고 내 어깨 바로 너머의 벽을 응시했다.
“결혼식은 취소야.” 그의 목소리는 감정 없이 밋밋했다.
그의 형이자 권씨 가문의 수장인 권도형 회장이 그의 곁에 서 있었다. 겨울밤처럼 차갑고 어두운 도형의 눈이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이 방의 진정한 권력자는 그였다. 그의 존재감은 무거운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권지혁은 고작 전무에 불과했지만, 권도형은 회장이었다. 그의 말은 곧 법이었다.
“취소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 목소리가 떨렸다.
“소희가… 나만 기억해. 의사들은 어떤 충격이라도 치명적일 수 있다고 했어.” 권지혁은 여전히 내 시선을 피하며 설명했다. “자기가 아직 내 여자친구인 줄 알아.”
그는 그녀를 위해 연기할 작정이었다. 내가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동안, 그는 그녀와 함께 5년 전의 환상 속에서 살아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럼 나는요?” 내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나는 어떡해요, 지혁 씨?”
그는 마침내 나를 보았지만, 그의 눈에는 미안함이 없었다. 오직 짜증만이 가득했다. “이현 씨, 이건 집안 문제야. 복잡하다고.”
“우리도 곧 가족이 될 사이였잖아요.” 충격을 뚫고 분노의 불꽃이 타오르며 쏘아붙였다.
바로 그때, 그가 그 짓을 했다. 그는 밖에 기다리는 하객들을 힐끗 본 다음, 제 형을 쳐다봤다. 그의 눈에 잔인하고 계산적인 생각이 스쳤다.
“오늘 밤, 이현 씨는 우리 형님의 파트너야. 손님으로.” 그는 문 근처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말했다.
그 말은 물리적인 타격처럼 나를 덮쳤다. 그의 약혼녀가 아니다. 그가 결혼하기로 한 여자가 아니다. 손님. 그의 형의 파트너. 그는 몇 마디 부주의한 말로 내 지위와 존엄성을 송두리리째 벗겨냈다.
나는 모욕감에 휩싸인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다른 여자의 다정한 연인 역할을 하러 떠나버렸다. 나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홀로 남겨졌다. 일어나지 않은 결혼식의 유령처럼.
그게 한 달 전이었다.
한 달 동안 권씨 저택에서 ‘손님’으로 살았다. 한 달 동안 권지혁이 윤소희에게 애정을 쏟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우리의 옛 장소들을 모두 그녀와 함께 찾아다니며, 그들의 공유된 과거를 재건하고 내 과거를 지워나갔다.
매일 밤, 그는 내 방으로 와서 일시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소희가 나아질 때까지만이야, 이현아. 그러면 우리 결혼할 거야. 약속해.”
거짓말. 전부 다.
나는 가장 예상치 못한 곳에서 희망을 찾았다. 저녁 뉴스에서 흘러나온, 고대의 약초 요법으로 명성이 자자한 지리산의 한 가문에 대한 조용한 대화였다. 그중 하나는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게 해준다고 했다.
심장이 갈비뼈를 미친 듯이 두드렸다. 해결책. 이 악몽에서 벗어날 방법.
미친 듯이 휘갈겨 쓴 정보를 손에 쥐고 권지혁을 찾아 달려갔다. 그의 서재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노크를 하려던 순간,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속 이럴 순 없어요, 전무님.” 그의 가장 신임하는 부하인 박 실장이 말했다. “회장님께서도 인내심을 잃어가고 계십니다. 치료제가 있다는 거 아시잖아요.”
숨이 멎었다. 그가 알고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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