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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죽음으로 맺어진 계약. 그 계약에 따라 나는 스물두 번째 생일에 케이라인 가문의 남자와 결혼하고, 그룹의 차기 CEO를 결정해야만 했다. 몇 년 동안, 나는 강태준을 쫓아다녔다. 내 짝사랑이 언젠가 그의 마음을 움직일 거라 굳게 믿으면서.
하지만 내 생일 파티에서, 그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나에게 주려던 팔찌를 내 의붓 여동생, 윤주아에게 건넸다.
"그냥 익숙해져, 신채아."
그가 비웃으며 말했다.
"내가 곧 CEO가 될 몸인데, 여자 하나에 묶여 살 순 없잖아."
그는 나를 염치없고 악랄한 여자라고, 가문의 망신이라고 불렀다. 내게 모욕감을 주고, 주아와 바람을 피웠으며, 그의 아내가 되고 싶다면 그의 외도를 모두 받아들이라고 요구했다.
그의 잔인함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사람들 앞에서 내 뺨을 때리고, 심지어 우리 결혼식 날에는 나를 칼로 찌르려 하기까지 했다.
지난 생에서, 나의 맹목적인 헌신은 비참한 결혼 생활로 끝이 났다. 그는 천천히 나를 독살했고, 나는 홀로 죽어갔다. 그가 내 의붓 여동생과 행복하게 사는 동안.
하지만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그 파티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가 내 선물을 주아에게 건네기 바로 직전의 순간으로.
이번에야말로, 나는 진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를 선택하지 않을 거란 것도.
제1화
신채아 POV:
잉크로 서명되고 아버지의 죽음으로 봉인된 그 계약은, 약속이라기보다는 사형 선고에 가까웠다. 그 계약서는 내가 스물두 번째 생일에 케이라인 가문의 남자와 결혼하고, 그를 케이라인 이노베이션의 차기 CEO 자리에 앉혀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었다.
나는 방금 강만철 회장님의 서재를 나서는 길이었다. 묵직한 참나무 문이 등 뒤에서 닫히는 소리와 함께, 회장님의 말씀이 어깨를 짓눌렀다. 웅장한 복도에는 오래된 부와 특권 의식의 냄새가 진동했다.
모퉁이를 돌자마자, 나는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단 한 사람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강태준.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사촌들과 어린 친척들이 무리를 지어 그를 둘러싸고, 그가 한 말에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보자 웃음소리가 멎었다.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무리가 양쪽으로 갈라졌고, 그 한가운데에 맞춤 정장을 입은 오만함의 결정체, 강태준이 서 있었다.
"이게 누구야, 고양이한테 끌려온 생쥐 꼴 좀 보게."
날카로운 인상의 사촌 중 하나인 강세라가 비아냥거렸다.
그녀의 친구가 킥킥거렸다.
"아직도 태준 오빠 꽁무니 쫓아다니니, 신채아? 넌 지치지도 않나 봐?"
"저러고도 얼굴을 들고 다닐 용기가 있다는 게 신기해."
또 다른 누군가가 내가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부린 추태를 생각하면 말이야."
그들은 항상 그룹의 공동 창업자였던 전설적인 우리 아버지를 들먹였다. 마치 아버지의 망령이 나를 창피하게 만드는 방패라도 되는 것처럼.
"신 이사님께서 지금 채아 씨 꼴을 보시면 무덤에서 통곡하시겠다."
세라가 거짓 연민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쩜 저렇게 필사적일까. 신씨 가문의 망신이야."
그 모든 말들 속에서, 강태준은 그저 나를 지켜보기만 했다. 그의 푸른 눈은 겨울 하늘처럼 차갑고 냉정했다. 그는 그들의 말이 허공에 맴돌도록 내버려 두었다. 지난 생에서 그 말들은 내게 비수처럼 꽂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소음일 뿐이었다.
"여기서 뭐 해, 신채아?"
강태준의 목소리가 속삭임을 가르며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는 한 걸음 다가서며 경멸이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훑었다.
"어디 보자."
그가 잔인한 미소를 입가에 띠며 말했다.
"할아버지랑 같이 있었던 거지? 할아버지를 네 편으로 만들려고."
그는 서재 쪽을 막연하게 가리켰다.
"있잖아, 그 '비운의 파트너 딸' 코스프레, 이젠 좀 지겹다. 그걸로 뽑아 먹을 만큼 뽑아 먹었잖아."
그의 말은 나를 쏘아붙이고, 나를 작고 하찮게 만들려는 의도였다. 그는 내 존엄성을 갈기갈기 찢고 있다고 생각했다.
"몇 년 동안이나 이 게임을 해왔잖아."
그가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제 끝났어. 넌 나를 망신시켰고, 네 자신도 망신시켰어."
그는 히죽거리는 친척들을 둘러보았다.
"온 서울이 우리 얘기로 떠들썩해. 네가 날 얼마나 귀찮게 하는지에 대해서. 나도 이 결혼, 슬슬 재고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
그는 더 가까이 다가왔고, 그의 향수 냄새가 내 공간을 침범했다.
"그리고 확실히 해두는데, 할아버지한테 달려가 봤자 내 마음은 안 변해. 네가 뭘 하든."
익숙한 경멸로 가득 찬 그의 눈이 내 눈을 붙잡았다. 그 비참했던 결혼 생활 동안 그가 내게 수천 번이나 보냈던 바로 그 눈빛이었다. 모든 배신과 거짓말에 앞서 나타났던 그 눈빛. 내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주는 그 눈빛.
나는 지난 생의 짝사랑을 기억했다. 너무나 맹목적이어서 나를 죽음으로 이끈 사랑. 그 기억이 뱃속에서 차갑게 뭉쳤다.
나는 천천히, 의식적으로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가 기억하는 신채아라면 무너졌을 것이다. 눈물을 글썽이며 애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여자는 죽었다.
"착각하지 마, 강태준."
내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고 고르게 나왔다.
나는 움츠러들지 않고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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