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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시에 위치한 서산 저택의 호화로운 안방.
야릇한 분위기와 뜨거운 공기 속, 신하린의 가슴에 있는 작은 점에 살짝 입을 맞춘 김도준이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혼 하자."
그의 목소리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미처 가시지 못한 여운에 숨을 헐떡이던 신하린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눈빛으로 김도준을 돌아봤다.
'우리가 결혼한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이혼하겠다는 걸까?'
김도준은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위암이래. 앞으로 살날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더라."
깊게 빨아들인 담배 연기를 내뱉자 얼굴 주위에 몽롱한 연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가 무심한 목소리로 설명을 덧붙였다.
"죽기 전에 내 아내로 살아보는게 마지막 소원이래."
깜짝 놀란 표정으로 김도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신하린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방 안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두 사람을 비추는 희미한 조명이 벽에 긴 그림자를 드리워 두 사람의 사이가 실제보다 더 떨어진 것처럼 보이게 했다.
김도준은 그런 그녀를 흘깃 쳐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것뿐이야."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6개월 후에 우리는 지금처럼 다시 부부로 지낼 수 있어. 하린아, 그 사람에게 남은 시간은 6개월뿐이야."
담담하면서도 무심하게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통보에 가까웠다. 신하린은 김도준의 옆모습을 한참이나 멍하나 바라봤다.
김도준은 신하린이 그의 요구라면 아무 조건 없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듯했다.
애초에 두 사람은 서로를 죽도록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라 신하린이 어린 시절의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일방적으로 그를 쫓아다닌 끝에 마침내 그와 결혼 할 수 있었다.
성인이 된 후에도 그녀는 김도준의 곁을 맴돌며 절대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신하린은 아직도 그날을 기억 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김도준은 신하린의 앞을 막아서며 그녀의 양부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다시 하린이 괴롭히면, 절대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
그 모습에 신하린은 김도준에게 마음을 주게 되었다.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로 거세게 쏟아지는 소나기 속에서 손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각목을 손에 꽉 움켜쥔 김도준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그녀를 지켜줬다.
그 순간 신하린은 김도준을 평생 사랑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날, 신하린은 완전히 김도준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그 뒤로 신하린은 그의 요구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고, 다른 누구보다 완벽하게 실행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칭찬했다.
"하린아, 너무 잘했어."
매번 그의 칭찬과 스킨십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연인이라고 하기도 애매 할 만큼 옅은 감정이었지만 신하린은 김도준의 성격이 원래 무뚝뚝한 탓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그녀가 사랑에 눈이 멀었다 빈정대도 그녀는 두 눈과 귀를 막고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가 몸과 마음을 그에게 바친 지 7년이 지났다. 1년 전, 김도준의 할아버지 김성호의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되었고 김씨 가문 사람들은 어르신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낫게 해줄 방법을 찾아 머리를 맞댔다.
결국 생각해 낸 방법이 김도준의 결혼이었다.
이후 김도준은 신하린을 찾아와 결혼을 요구했다.
그 순간, 신하린은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이 드디어 빛을 발했다고 확신했지만 혼인신고를 하자마자 김도준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그녀를 증오하고 원망하는 것 같기도 했다.
"신하린, 내 말 듣고 있어?"
그녀의 눈빛이 공허해진 것을 본 김도준이 미간을 찌푸리고 그녀를 응시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
그녀가 나긋하게 물었다.
그러나 김도준은 대답 대신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하도 불쌍해서 그래. 지금은 내가 곁에 있어 줘야 할 것 같아."
그의 대답에 신하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럼 나는?"
김도준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그의 눈빛에 귀찮은 기색이 피어 올랐다.
그렇게 3초 후,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6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한부야. 너는 모르겠지만 아직 날 많이 사랑한다고 했어. 우리가 결혼했기 때문에 너에게 상처주기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지 않은 거야. 내가 물질적으로 보상해 주려 해도 싫다고 거절만 한 사람이야. 착한 사람이니까 이번에는 네가 양보해. 내가 널 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지 마."
김도준이 차분하게 내뱉은 말은 그가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더 큰 상처가 되었다.
이미 결혼한 유부남을 유혹하는 게 어딜 봐서 착하다는 건지 이해 할 수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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