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정략결혼에는 잔혹한 조건이 붙어 있었다. 내 남편 강태준은 그의 어린 시절 집착 상대였던 윤세라가 만든 아홉 개의 ‘충성심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했다. 아홉 번, 그는 아내인 나를 버리고 그녀를 선택해야만 했다.
결혼기념일, 그는 마지막 선택을 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고속도로 한복판에 아픈 나를 피 흘리게 내버려 둔 채로.
그는 단지 세라가 무섭다고 전화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에게 달려갔다. 이전에도 그랬다. 내 갤러리 오프닝 날에는 그녀가 악몽을 꿨다는 이유로, 할머니의 장례식 날에는 기가 막히게 차가 고장 났다는 이유로 나를 버렸다. 내 모든 삶은 그들의 이야기의 각주에 불과했다. 나중에 세라가 직접 고백했듯, 그녀가 나를 위해 직접 고른 역할이었다.
4년간 위로상으로 살아온 내 심장은 이미 얼음덩어리였다. 더 이상 줄 온기도, 부서질 희망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마침내 끝났다.
그래서 세라가 마지막 굴욕을 주기 위해 나를 내 아트 갤러리로 불렀을 때, 나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녀를 기쁘게 하려고 안달이 난 내 남편이, 그녀가 내민 서류를 쳐다보지도 않고 서명하는 것을 차분하게 지켜보았다. 그는 투자 계약서에 서명하는 줄 알았다. 한 시간 전 내가 서류철에 끼워 넣은 것이 이혼 합의서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제1화
서아린 POV:
결혼기념일 밤, 남편은 그녀를 위해 피 흘리는 나를 고속도로 한복판에 버려두고 떠났다. 그가 그녀를 선택한 아홉 번째 날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이 될 터였다.
비는 앞 유리를 막는 거대한 벽 같았고, 와이퍼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날카로운 경련이 뱃속을 뒤틀어, 나는 배에 손을 갖다 댈 수밖에 없었다.
내 옆에서, 강태준은 핸들을 꽉 쥐고 있었다. 그의 손마디는 하얗게 질려 있었다. 레스토랑을 떠난 이후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긴장감은 실체처럼 차 안의 좁은 공간을 가득 메워 숨쉬기조차 힘들게 했다.
그때 그의 전화기가 어두운 차 안을 밝혔다. 화면이 그의 얼굴에 창백하고 병적인 빛을 드리웠다.
윤세라.
그의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턱 근육이 꿈틀거렸다. 그는 콘솔에서 전화기를 낚아채, 첫 번째 벨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엄지손가락으로 전화를 받았다.
“세라야?”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다급했다. 지난 한 시간 동안 나에게 보였던 모든 냉정함은 사라지고, 끈적끈적한 시럽 같은 걱정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 목소리에 내 배는 다시, 이번에는 더 심하게 움츠러들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높고 공황에 빠진 듯한 울음소리였다. “태준 오빠, 나 무서워. 천둥이… 너무 시끄러워. 잠을 못 자겠어.”
“괜찮아, 아가. 내가 지금 갈게.” 그는 망설이지도 않았다. 그 말은 자동적으로 튀어나왔다. 그가 수천 번도 더 하고 지켰던 약속이었다.
나에게는 단 한 번도 해주지 않았던 약속.
그는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차는 젖은 아스팔트 위에서 무서운 비명을 지르며 미끄러졌다. 우리는 텅 빈 고속도로 갓길에 급정거했고, 지나가는 트럭의 빨간 후미등이 비에 젖은 창문을 통해 번져 보였다.
“택시 잡아 가, 아린아.”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의 눈은 이미 어두운 길을 훑으며 그녀에게 가는 가장 빠른 길을 계산하고 있었다.
“태준 씨, 배가…” 나는 말을 시작했다. 고통 때문에 목소리가 가늘어졌다. “몸이 안 좋아요.”
그는 마침내 나를 돌아보았다. 그의 표정은 조급하고 짜증이 역력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현금 뭉치를 꺼내 내 손에 쥐여주었다. “여기. 이거면 충분하고도 남아. 괜찮을 거야.”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엔진을 굉음과 함께 울리며 급격한 유턴을 했다. 그 바람에 나는 조수석 문에 부딪혔다.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 그의 헤드라이트가 폭풍 속으로, 그녀를 향해 질주하며 사라졌다.
나는 포효하는 어둠 속에 홀로 남겨졌다. 손에 쥔 구겨진 지폐는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배의 통증은 가슴속의 차갑고 텅 빈 아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것이 아홉 번째였다. 아홉 번째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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