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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통의 메시지, 거기에는 여섯 장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서로 엉켜진 속옷, 맞잡은 손, 구겨진 침대 시트, 욕실 거울에 비친 흐릿한 실루엣...
고시아에게 이런 도발적인 메시지는 처음이 아니었다.
고시아는 사진 속에서 그 여자의 손목을 거칠게 움켜쥔, 뼈마디가 굵은 손이 강민규의 것임을 단숨에 알아차렸다. 무려 4년간 함께 살아온 남편의 손이었다.
그녀는 사진 속의 날짜를 한 번 확인했는데 그날은 마침 두 사람의 결혼기념일이었다.
그날 아침, 강민규는 저녁에 함께 축하하자고 말해놓고는 곧바로 연락이 두절된 채 사흘을 잠적했다. 결국 돌아온 건 갑작스러운 출장이 생겼다는 그의 비서가 보낸 단 한 줄 메시지였다.
'퍽이나 갑작스러웠겠다.' 고시아는 비웃음을 흘리며 채팅창을 닫고 연락처 목록에서 번호 하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자, 상대방은 곧장 전화를 받았다.
"시아야."
"선배, 전에 말씀하셨던 기밀 연구에 참여할 인원 말이에요. 이미 결정했어요."
"누군데?" 핸드폰 너머에서 의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요."
그러자 상대방은 잠시 침묵하더니, 곧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장난하냐? 너도 규율이 엄한 걸 잘 알고 있잖아. 일단 기밀 연구에 들어가면 끝날 때까지 외부랑 연락 다 끊어야 하고, 나가는 건 말도 안 돼. 심지어 프로젝트에 정식 등록되면 실종자로 처리돼. 기록도 다 말소돼서 완전히 새로운 신분으로 살아야 해. 그렇게 되면... 네 가족은? 강민규는 어쩔 건데?"
고시아의 시선은 자연스레 벽에 걸린 결혼사진으로 향했다.
결혼 사진 속 두 사람은 마치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한 듯한 눈빛을 나누고 있었다.
귓가에는 여전히 강민규가 속삭이던 맹세가 또렷하게 맴돌았고, 그와 함께했던 달콤했던 순간들은 이제 쓴물처럼 그녀의 가슴을 적셨다.
"이미 결정 내렸어요. 내일 서류 작성하러 갈게요."
그렇게 말한 후, 고시아는 곧장 전화를 끊었고 상대방에게 계속 설득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바로 그때, 아래층에서 차량 브레이크 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강민규의 훤칠한 실루엣이 현관에 나타났다. 그는 뼈마디가 선명한 큰 손으로 검은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곧장 욕실로 향했다.
옷걸이에 걸린 그의 외투에선 VRA의 최신 향수 FIRE2의 짙은 향이 풍겨 나왔다. 불 같이 열정적이고 화끈한 그 향은 고시아의 담담함과는 정반대의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간단히 샤워를 마친 강민규는 회색 목욕가운을 두른 채 욕실에서 나왔다.
헐렁하게 묶인 허리끈 사이로 드러난 탄탄한 가슴과 복근, 촉촉한 머리카락에 어린 물기가 얼굴선을 따라 흘러내리며 그의 눈빛을 더 차갑고 짙게 만들었다.
강씨 가문의 장남이자 금융계의 금수저인 강민규는 말 그대로 외모든 재력이든,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남자였다.
한때 그에게 그렇게 설레던 그녀는, 지금은 그만큼이나 깊은 혐오로 마음속에 가득 차 있었다.
"왜 멍하니 있어? 내 얼굴에 다시 한번 반한 거야?" 강민규는 느긋하게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낮고 섹시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 보고 싶었어?"
말하는 동시에 강민규의 손은 그녀의 허리 라인을 따라 아래로 미끄러졌고, 닿은 피부가 본능적으로 거부 반응을 일으키자, 고시아는 곧바로 몸을 살짝 피했다.
그러자 강민규의 손은 그대로 허공에 멈추었고,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왜 그래? 화났어?"
고시아는 감정을 다잡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아무 의미도 없는 말다툼에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가슴 속의 고통을 억누르며 침대 옆의 서랍에서 비밀번호가 걸린 박스를 꺼내 강민규에게 건넸다. "이거, 선물이야."
그 안에는 그녀의 서명이 적힌 이혼서류가 들어 있었고, 이것은 그녀가 강민규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비밀번호를 맞혀야 열 수 있어."
강민규는 박스를 힐끗 보고는, 고사아가 여전히 장난치는 줄로만 생각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박스를 탁자 위에 툭 내려놓고는 그녀를 다시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에 턱을 올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나한테는 네가 제일 큰 선물이야."
고시아는 저도 모르게 움찔하며 몸을 피했고, 강민규는 잠시 멈칫하더니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일 때문에 바빠서 기념일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는데, 화 많이 났지?"
강민규는 그녀의 뺨에 살짝 입을 맞춘 뒤, 옷걸이에 걸린 외투 속에서 네모난 상자 하나를 꺼내 뚜껑을 열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마음에 들어?"
상자 속엔 정교하게 세공된 고풍스러운 금실옥 비녀가 들어 있었다.
"특별히 널 위해 낙찰 받은 거야. 너 이런 거 제일 좋아하잖아. 한번 해봐."
남자의 목소리엔 억눌린 애정과 은근한 단호함이 섞여 있었다.
한때, 고시아는 그 말투에 너무나도 쉽게 무너졌다.
운성 사람이라면 강민규가 아내를 목숨처럼 아낀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고시아도 그때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휴대폰 속의 그 사진들만 없었다면, 그녀는 정말로 이 선물에 감동했을지도 모른다.
사진 속, 스무 살 초반으로 보이는 혼혈의 여자는 요염한 눈빛으로 고개를 젖히고 있었고, 풍성한 웨이브 머리는 강민규가 조금 전 고시아에게 건넨 비녀와 같은 것으로 느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늘고 예쁜 목덜미엔 선명한 키스 자국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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