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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품에 안아보지도 못한 아기를 애도하며 병원의 소독약 냄새 가득한 침묵 속에 누워 있었다. 모두가 비극적인 사고였다고 했다. 발을 헛디뎌 넘어졌을 뿐이라고. 하지만 나는 남편이 나를 밀쳤다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최진혁이 마침내 병문안을 왔다. 그의 손에는 꽃다발 대신 서류 가방이 들려 있었다.
가방 안에는 이혼 서류와 비밀 유지 계약서가 들어 있었다.
그는 내 친구이자 자신의 내연녀가 임신했다고 차분하게 통보했다. 이제 그들이 자신의 ‘진짜 가족’이며, 어떤 ‘불미스러운 일’도 없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조작된 정신과 진료 기록을 이용해 나를 불안정하고 위험한 사람으로 몰아가겠다고 협박했다.
“서류에 사인해, 서은하.”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아니면 이 편안한 병실에서 좀 더… 안전한 시설로 옮겨지게 될 거야. 아주 오랫동안.”
내가 사랑했던 남자의 얼굴에서 나는 괴물을 보았다. 이건 비극이 아니었다. 내 인생을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기업 인수 합병이었다. 내가 아이를 잃고 있을 때, 그는 변호사들을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슬픔에 잠긴 아내가 아니었다. 처리해야 할 부채, 정리해야 할 골칫거리일 뿐이었다.
나는 완벽하게 덫에 걸렸다.
절망이 나를 집어삼키려던 바로 그 순간, 돌아가신 부모님의 오랜 변호사님이 과거의 유령처럼 나타났다. 그녀는 묵직하고 화려한 열쇠 하나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부모님께서 탈출구를 남겨두셨단다.” 그녀는 결의에 찬 눈빛으로 속삭였다. “바로 오늘 같은 날을 위해서.”
그 열쇠는 수십 년 전, 우리 할아버지들이 맺었던 잊힌 계약서로 나를 이끌었다.
나를 한 남자에게 묶어두는, 철갑처럼 단단한 혼인 서약서. 내 남편이 죽음보다 더 두려워하는 단 한 남자. 무자비하고 은둔하는 억만장자, 강태준.
제1화
품에 안아보지도 못한 내 아이의 유령이 병실의 소독약 냄새 가득한 침묵 속을 떠돌았다.
희망이 있던 자리에 텅 빈 공간이 생겨났고, 배 속 깊은 곳에서부터 유령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소독약 냄새는 빳빳하고 얇은 시트에 배어 있었고, 숨을 쉴 때마다 날카로운 화학 약품 냄새가 목을 긁었다. 굳게 닫힌 창문 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풍경은 잿빛 비와 흐릿한 불빛으로 번져, 마치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내 세상은 이 네 개의 하얀 벽과, 규칙적으로 울리며 나를 비웃는 듯한 심장 박동 모니터 소리, 그리고 잔인하게 무한 반복되는 기억 속으로 오그라들었다.
*날카롭고 거친 손길. 나를 향해 돌진하던 번쩍이는 대리석 바닥. 걱정스럽게 나를 돌아보는 대신, 내 친구였던 ‘그 여자’를 보호하듯 감싸 안던 최진혁의 얼굴. 바닥에 구겨진 내게 겨우 향했던 그의 눈에는 사랑도, 당황도 없었다. 오직 차갑고 끔찍한 무관심뿐이었다. 귀찮음. 나는 그의 행복으로 가는 길에 놓인 장애물이었다.*
그 기억은 내 마음속에 박힌 유리 조각 같았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더 깊이 파고들었다. 의사들은 비극적인 사고라고 했다. 발을 헛디뎌 넘어졌을 뿐이라고. 나는 진실을 알았다. 나는 버려졌다.
문이 딸깍 열리는 소리에 과거의 수렁에서 빠져나왔다. 나는 움찔했다. 심장이 덫에 걸린 새처럼 갈비뼈를 두드려댔다. 따뜻한 미소와 함께 몰래 가져온 초콜릿 바를 건네줄 내 가장 친한 친구, 지민이길 바랐다.
하지만 온 사람은 최진혁이었다.
그는 꽃을 들고 오지 않았다. 매끈한 가죽 서류 가방을 들고 왔다. 그는 문가에 서 있었다. 완벽하게 재단된 양복을 입은 낯선 남자. 방 안의 모든 빛을 흡수하는 듯한 짙은 차콜색 옷감. 그에게서는 비싼 향수 냄새와 그가 방금 뚫고 온 비 냄새가 났다. 그는 침대로 다가오지 않았다.
내 안의 목소리가 비명을 질렀다. *저 남자는 미안해하지 않아. 저것 봐. 널 보고 있지도 않잖아. 기계들을 보고 있어. 계산하고 있는 거야.*
“서은하.” 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사업 계약을 성사시킬 때 쓰던 그 부드럽고 합리적인 톤이었다. 한때는 안심이 된다고 생각했던 목소리였다. 이제는 소름이 끼쳤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목구멍은 사막이었고, 혀는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나는 그저 그를 지켜보았다. 내 손가락은 내가 가진 유일한 방패인 얇은 담요를 움켜쥐었다.
그는 부드럽고 단호한 소리를 내며 서류 가방을 열었다. 그는 서류 뭉치를 꺼내 내 침대 옆 이동식 테이블 위에 무균적인 소리를 내며 올려놓았다. 맨 위 페이지에는 선명하고 굵은 글씨로 ‘이혼 합의서’라고 적혀 있었다.
“조건은 후하다고 생각할 거야.” 그가 말했다. 그의 시선이 마침내 내게 닿았다. 평평하고 감정이 없었다. 그의 턱은 굳어 있었고, 귀 근처의 작은 근육이 경련했다. 그는 초조했다. 이 일을 끝내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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