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를 익사시켰고, 나는 그의 세상을 불살랐다.

그는 나를 익사시켰고, 나는 그의 세상을 불살랐다.

Ga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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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약혼자, 강태준은 클라이밍 사고로 내가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자, 나만을 위한 가상현실 세계를 만들어주었다. 그는 그곳을 ‘아르카디아’라 불렀다. 나의 성역. 그의 게임 속에서 나는 망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무적이자 최강의 챔피언, ‘발키리’였다. 그는 나를 벼랑 끝에서 참을성 있게 간호해준 구원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가 IT 컨퍼런스 무대에 선 모습을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보게 되었다. 그는 내 재활치료사였던 주다희의 어깨를 감싼 채, 그녀가 평생을 함께할 여자라고 세상에 공표했다. 진실은 깨어있는 악몽이었다. 그는 단순히 바람을 피운 게 아니었다. 내 진통제를 몰래 약효가 더 약한 진정제 성분이 든 약으로 바꿔치기하며, 의도적으로 내 회복을 늦추고 나를 약하고 의존적인 상태로 만들고 있었다. 그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팔찌를, 내 가상 세계의 칭호를, 심지어 내가 우리를 위해 세웠던 결혼 계획까지 전부 주다희에게 넘겨주었다. 내 인생 최악의 순간이 담긴 굴욕적인 사진을 유출시켜 게임 커뮤니티 전체가 나에게 등을 돌리게 만들었고, 나를 스토커로 낙인찍었다. 결정타는 그의 승리 파티에서 그와 대면하려 했을 때 날아왔다. 그의 경호원들은 나를 구타했고, 그의 무심한 한마디에 내 정신 잃은 몸을 더러운 분수대에 던져 ‘술이나 깨게 하라’고 했다. 내가 더는 힘든 세상을 살지 않게 해주겠다던 남자가, 자신이 만든 세상 속에서 나를 익사시키려 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았다. 나는 그와 그 도시를 뒤로했다. 내 다리가 다시 강해지면서, 내 결심도 굳건해졌다. 그는 내 이름과 명성, 그리고 내 세계를 훔쳐 갔다. 이제 나는 다시 접속한다. ‘발키리’가 아닌, 나 자신으로. 그리고 그의 제국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제1화

내 약혼자, 강태준은 클라이밍 사고로 내가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자, 나만을 위한 가상현실 세계를 만들어주었다. 그는 그곳을 ‘아르카디아’라 불렀다. 나의 성역. 그의 게임 속에서 나는 망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무적이자 최강의 챔피언, ‘발키리’였다. 그는 나를 벼랑 끝에서 참을성 있게 간호해준 구원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가 IT 컨퍼런스 무대에 선 모습을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보게 되었다. 그는 내 재활치료사였던 주다희의 어깨를 감싼 채, 그녀가 평생을 함께할 여자라고 세상에 공표했다.

진실은 깨어있는 악몽이었다. 그는 단순히 바람을 피운 게 아니었다. 내 진통제를 몰래 약효가 더 약한 진정제 성분이 든 약으로 바꿔치기하며, 의도적으로 내 회복을 늦추고 나를 약하고 의존적인 상태로 만들고 있었다.

그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팔찌를, 내 가상 세계의 칭호를, 심지어 내가 우리를 위해 세웠던 결혼 계획까지 전부 주다희에게 넘겨주었다.

내 인생 최악의 순간이 담긴 굴욕적인 사진을 유출시켜 게임 커뮤니티 전체가 나에게 등을 돌리게 만들었고, 나를 스토커로 낙인찍었다.

결정타는 그의 승리 파티에서 그와 대면하려 했을 때 날아왔다. 그의 경호원들은 나를 구타했고, 그의 무심한 한마디에 내 정신 잃은 몸을 더러운 분수대에 던져 ‘술이나 깨게 하라’고 했다.

내가 더는 힘든 세상을 살지 않게 해주겠다던 남자가, 자신이 만든 세상 속에서 나를 익사시키려 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았다. 나는 그와 그 도시를 뒤로했다. 내 다리가 다시 강해지면서, 내 결심도 굳건해졌다. 그는 내 이름과 명성, 그리고 내 세계를 훔쳐 갔다. 이제 나는 다시 접속한다. ‘발키리’가 아닌, 나 자신으로. 그리고 그의 제국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제1화

한서리 POV:

내 침실의 유일한 불빛은 손에 쥔 휴대폰에서 새어 나왔다. 작은 화면 속에서도 조각처럼 완벽한 강태준의 얼굴이 그가 연설하는 IT 컨퍼런스 무대 조명에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라이브 스트리밍. 원래대로라면 나는 저기, 맨 앞줄에 그의 자랑스러운 약혼자로 앉아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사고 이후 그가 나를 위해 지어준 이 금박 입힌 새장 안에 갇혀 있었다.

평소라면 닳아빠진 내 신경을 어루만져주던 그의 목소리가 고요한 방 안에서 부자연스럽게 울려 퍼졌다. 어둠 속에서 내게 약속을 속삭이던 그 목소리, 끔찍한 재활 치료 시간 내내 나를 격려해주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가 내뱉는 말들은 전부 틀렸다.

“주다희 씨는 뛰어난 재활치료사, 그 이상입니다.”

그가 환호하는 관중을 향해 선언했다. 그의 팔은 소유욕을 드러내며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주다희, 내 재활치료사. 그녀의 미소는 눈이 부시게 밝았다. 바위가 쏟아지고 뼈가 부러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내 세상이 무너지기 전, 내가 짓던 미소를 완벽하게 흉내 내고 있었다.

“그녀는 ‘아르카디아 크로니클’의 다음 진화를 위한 영감 그 자체입니다. 우리 회사의 심장이죠. 그리고 제가 평생을 함께하기로 마음먹은 여자입니다.”

숨이 고통스럽게 터져 나왔다. 휴대폰을 쥔 내 손마디가 하얗게 변했다. 매끄러운 케이스가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불과 몇 분 전, 익명의 번호로 전송된 영상 클립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한 가십 사이트의 소셜 미디어 피드에 올라온 짧은 영상이었다.

평생을 함께하기로 마음먹은 여자.

그 말들이 텅 빈 머릿속을 의미 없이 맴돌았다. 그녀가 그 여자라면, 나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침실 문이 딸깍 소리를 내며 열리고, 복도의 불빛 한 줄기가 바닥을 가로질렀다.

“서리야? 자기야, 왜 불을 다 끄고 있어?”

익숙하고 능숙한 걱정이 묻어나는 강태준의 목소리가 어둠을 갈랐다.

메인 조명이 깜빡이며 켜지자, 나는 갑작스러운 밝기에 눈을 질끈 감았다. 발소리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의 비싼 가죽 구두가 마룻바닥에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내 휠체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차가운 손을 내 이마에 얹었다.

“몸이 축축하네. 아파? 약 먹을 시간 놓쳤어?”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내 시선은 그의 잘생긴 얼굴에 어린 걱정스러운 주름을 좇았다. 이 남자는 몇 주 동안 내 병원 침대 곁을 지켰다. 참을성 있게 밥을 먹여주고, 몸을 씻겨주고, 망가진 내 몸이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유일한 것이라고 속삭여주던 남자였다. 그는 혁신적인 햅틱 VR 게임인 ‘아르카디아 크로니클’을 오직 나를 위해, 내가 다시 산을 오를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내 다리가 완벽하게 작동하고 내가 강해질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저 무대 위의 남자, 방금 다른 여자에게 평생을 맹세한 남자는… 내 강태준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알던 강태준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주다희 씨, 당신한테 어떤 사람이야, 태준 씨?”

그는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 영상을 보자 그의 미소가 흔들렸다. 그의 눈에 스친 한순간의 당황은 이내 지친 듯한 짜증으로 빠르게 바뀌었다.

“아, 진짜. 또 이거야?”

그는 한숨을 쉬며 완벽하게 세팅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자기야, 내가 말했잖아. 그분 부모님이 우리 회사 주요 투자자라고. 따님 빨리 안정적인 사람 만나 정착하라고 압박이 심해서, 나한테… 대외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한 거야. 그분들 눈속임용으로 잠깐 가짜 연애하는 척하는 거지. 전부 비즈니스야.”

주다희. 그가 석 달 전 나를 위해 고용했던 재활치료사. 내가 독립성을 되찾도록 돕기로 되어 있던 사람.

나는 그를 지켜보며 침묵했다. 그의 첫 반응, 그 당황은 너무나도 진짜 같았다.

내 눈에서 의심을 읽었는지, 그는 허둥지둥 자신의 휴대폰을 꺼냈다.

“봐.”

그가 내 얼굴 앞에 화면을 들이밀었다.

“여기 우리 문자 내용이야. 다 있어. 발표 계획 짜는 거, 그쪽 집안 홍보팀이랑 조율하는 거. 이건 그냥 게임이야, 서리야. 회사 차원의 게임.”

나는 메시지들을 훑어보았다. 그럴듯해 보였다. 심지어 딱딱하기까지 했다. 비즈니스 용어와 일정 메모로 가득했다. 내 가슴속에서 얼음덩이처럼 굳어 있던 심장이 아주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

“알았어.”

나는 속삭였다. 싸울 기운이 빠져나갔다. 피곤했다. 고통도, 의심도, 이 방의 네 벽도 모두 지긋지긋했다.

그는 안도하는 듯 어깨에 힘을 뺐다. 그는 나를 끌어안고 내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었다.

“맹세할게, 서리야.”

그가 감정이 북받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뿐이야. 언제나.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어.”

나는 그의 품에 기댔다. 익숙한 그의 향수 냄새가 나를 감쌌다. 나는 그를 믿고 싶었다. 믿어야만 했다.

“일으켜 줘.”

새로운 결심이 내 목소리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걷는 연습하고 싶어.”

그의 얼굴이 내가 사랑에 빠졌던 그 구원자의 미소로 환하게 빛났다.

“물론이지, 내 사랑. 당신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그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의 손은 내 허리를 단단하고 강하게 받쳤고, 그의 움직임은 조심스럽고 능숙했다. 나는 시험 삼아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을 내디뎠다. 다리가 떨렸지만 버텨주었다. 우리가 방을 가로지르고 있을 때, 그의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그는 움찔하며 휴대폰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뺐다.

“그냥 받아, 태준 씨.”

나는 벽에 기대며 말했다.

“일이겠지.”

그는 고마운 표정을 짓고는 복도로 나가 전화를 받으며 문을 부드럽게 닫았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숨이 거칠게 터져 나왔다.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고 벽을 밀었다. 한 걸음. 그리고 두 걸음. 내 움직임은 점점 더 안정되고 자신감이 붙었다. 진짜 미소,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짓는 미소가 내 입가에 번졌다. 할 수 있다. 나는 강해지고 있었다.

나는 손으로 벽을 짚으며 방을 가로질러 문까지 갔다.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눈에 비친 자랑스러움을 보고 싶었다. 나에 대한 그의 믿음, 우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내 손가락이 차가운 문고리에 닿는 순간, 복도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능숙한 온기가 모두 벗겨진, 낮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알아, 다희야, 안다니까. 사랑해, 정말로. 하지만 그 감정과는 달라. 내가 어떻게 널 떠나겠어?”

내 피가 차갑게 식었다.

“그 여자가 영상을 봤어. 진정시켜야 했지. 걱정 마, 내 말 믿었으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응, 약사한테 이미 말해뒀어. 내일 진통제는 진정제 부작용 있는 저용량으로 바꿔놓을 거야. 회복 속도를 딱 적당히 늦춰주겠지. 우리한테 시간이 조금만 더 필요해.”

“아무도 우리 사이 모를 거야. 약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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