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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강한수는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집에 돌아왔다.
가족들은 이미 식사를 끝낸 모양이었고, 식탁에는 먹다 남은 반찬만 지저분하게 남아있었다. 데릴사위인 그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장인 김학상이 일그러진 얼굴로 물었다.
"돈은 받았어?"
처남 김기서가 최근에 여자 친구를 사귀었다. 결혼을 앞두고 상대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차와 집을 요구했다.
상원시에서 40평 쯤 되는 아파트는 계약금만 하더라도 6000만원이 넘는다.
하지만 김씨네 집안이 잦고 있는 돈이라고 해야 기껏해야 3000만원 밖에 되지 않았고 김학상은 강한수에게 직장에 가서 미래 1년치 월급을 미리 정산 받아 오라고 억지를 부렸다.
장모 이은화가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싫으면 당장 꺼져! 더 이상 너같이 쓸모 없는 놈을 먹여 주고 재워 줄 생각은 없으니까!"
강한수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고 마음이 착잡했다.
배틀 그라운드에 열중하고 있던 처남 김기서가 입을 삐쭉 내밀고 비아냥거렸다.
"누나가 저런 병신새끼와 결혼을 하다니,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나 보지?"
그때, 강한수의 아내 김하늘이 1층으로 내려왔다.
허리까지 흘러 내린 검은 생머리와 예쁜 얼굴. 아름답다는 단어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는 강한수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김하늘은 그가 모든 걸 다 바칠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하는 여자였다. 그녀가 없었다면 그는 단 하루라도 이 집안에 머물지 않았을 것이다.
2년 전, 그는 대학로에 갑자기 나타났다. 그는 자신이 누군지, 어디에서 왔는지도 몰랐고 그저 자신의 이름이 강한수라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딱하게 여긴 김하늘은 매일 가계에서 팔다 남은 음식을 그에게 갖다 주었다. 모든 게 혼란스럽고 도움 받을 데 조차 없었던 그에게 착한 김하늘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존재였다.
김하늘의 따뜻한 미소가 천천히 그의 마음속에 스며들었고 그렇게 그는 김하늘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 뒤로 강한수는 대학로와 멀지 않은 곳에서 노숙을 하며 지냈다.
김하늘의 가족들이 운영하는 고깃집이 장사를 시작하면 그는 멀찍이 떨어져 김하늘을 지켜봤고 그들이 장사를 마치면 그는 나서서 마무리를 도왔다.
그의 도움에 대한 대가는 팔다 남은 음식이었다. 손해를 보는 건 없었기에 김학상 부부는 굳이 반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 김씨 일가가 살고 있던 동네가 재개발 지구로 선택 받았고 보상으로 단독주택을 받게 되었다.
자녀들 중에 결혼하여 따로 사는 사람이 없었기에 일가족은 집 한 채 밖에 받을 수 없었다. 이 결과가 못마땅했던 김상학 부부는 20살을 넘긴지 얼마 되지 않은 김하늘을 부추기며 결혼을 재촉했다.
끊임 없는 결혼 재촉에 김하늘은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강한수와 결혼을 하여 집을 받는 즉시 다시 그와 이혼을 하는 것이다.
강한수의 정체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었지만 그 동안 곁에서 지켜 본 바로는 적어도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강한수 말고는 그녀의 계획에 동의해 줄 만한 사람도 없었다.
그녀가 강한수에게 자신의 계획을 털어 놓았을 때, 강한수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노숙 생활을 끝낼 수 있었던 건 물론이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한 집에서 살수 있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김학상 부부는 딸의 처사가 내키지 않았다. 딸이 거지와 결혼을 하다니!? 체면이 깎이는 일이 분명했다. 하지만 억 소리가 나는 집을 한 채 더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끝내 딸의 결혼을 동의 했다.
이어 김학상은 사람을 찾아 다니며 부탁을 하여 강한수에게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주었고 그 즉시, 강한수와 김하늘은 혼인 신고를 했다. 나중에 김학상은 강한수에게 병원 간병인으로 일할 수 있도록 일자리까지 마련해 주었다.
강한수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장인 장모가 매일 같이 그에게 악담을 퍼부었고 김하늘 또한 미지근한 태도로 그를 대했다. 그럼에도 강한수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며 살았다.
김하늘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입을 열었다.
"기수의 결혼이 달린 일이야. 가능하다면 네가 힘을 써줬으면 좋겠어."
강한수가 바로 대답했다.
"오늘도 상사를 찾아가 부탁을 했는데 절대 안 된다며 거절 했어. 내..."
강한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은화가 차갑게 비웃으며 말을 가로챘다.
"쓸모 없는 놈!"
김기서가 옆에서 거들었다.
"누나, 어쩌다가 이런 멍청한 놈과 결혼하게 된 거야? 누나가 아까워 죽겠어."
김하늘은 동생을 향해 눈을 부라리고는 고개를 돌려 강한수에게 말했다.
"주방에 남은 반찬이 있을 거야. 내가 덥혀 줄게."
강한수가 급히 손을 저었다.
"아니야. 대충 먹으면 돼."
그는 주방에서 김씨 식구들이 먹다 남긴 차갑게 식은 반찬들로 대충 배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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