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날

Ga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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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라의 숨통이 조여왔다. 가슴이 거대한 족쇄에 짓눌리는 듯했다. 여섯 살배기 아들, 이준이가 공포에 질려 새하얗게 굳은 얼굴로 엄마를 바라봤다. 아나필락시스 쇼크.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 박지훈의 이름을 힘겹게 내뱉으며 119에 전화하라고 애원했다. “엄마가 숨을 못 쉬어요!” 이준이가 전화기에 대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내연녀 최유라와 ‘인맥 관리’ 중이던 지훈은 그저 ‘공황장애’일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몇 분 뒤, 그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아라를 위해 불렀다던 구급차는 이제 겨우 발목을 ‘삐끗했을’ 뿐인 유라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아라의 세상이 산산조각 났다. 작은 가슴에 영웅심이 불타오른 이준이는 도움을 청하러 밖으로 뛰쳐나갔지만, 그대로 차에 치이고 말았다. 끔찍한 충돌음. 그녀는 제 비극 속의 유령처럼, 구급대원들이 작고 부서진 아이의 몸을 하얀 천으로 덮는 것을 지켜봤다. 지훈이 유라를 선택했기 때문에, 그녀의 아들이 죽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절망. 끔찍한 공포. 뼈를 깎는 죄책감. 이준이의 마지막 모습이 뜨거운 낙인처럼 영혼에 새겨졌다. 어떻게 아빠가, 남편이, 이토록 괴물같이 이기적일 수 있을까? 쓰디쓴 후회가 영혼을 잠식했다. 최유라. 언제나 최유라였다. 그 순간, 아라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는 거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살아있는 이준이가 건강한 모습으로 달려왔다. 이건 끔찍하고도, 불가능한 두 번째 기회였다. 그 파멸적인 미래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되찾고, 아들을 지키고, 그들에게 죗값을 치르게 할 것이다.

제1화

서아라의 숨통이 조여왔다. 가슴이 거대한 족쇄에 짓눌리는 듯했다.

여섯 살배기 아들, 이준이가 공포에 질려 새하얗게 굳은 얼굴로 엄마를 바라봤다.

아나필락시스 쇼크.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 박지훈의 이름을 힘겹게 내뱉으며 119에 전화하라고 애원했다.

“엄마가 숨을 못 쉬어요!” 이준이가 전화기에 대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내연녀 최유라와 ‘인맥 관리’ 중이던 지훈은 그저 ‘공황장애’일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몇 분 뒤, 그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아라를 위해 불렀다던 구급차는 이제 겨우 발목을 ‘삐끗했을’ 뿐인 유라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아라의 세상이 산산조각 났다.

작은 가슴에 영웅심이 불타오른 이준이는 도움을 청하러 밖으로 뛰쳐나갔지만, 그대로 차에 치이고 말았다.

끔찍한 충돌음.

그녀는 제 비극 속의 유령처럼, 구급대원들이 작고 부서진 아이의 몸을 하얀 천으로 덮는 것을 지켜봤다.

지훈이 유라를 선택했기 때문에, 그녀의 아들이 죽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절망.

끔찍한 공포.

뼈를 깎는 죄책감.

이준이의 마지막 모습이 뜨거운 낙인처럼 영혼에 새겨졌다.

어떻게 아빠가, 남편이, 이토록 괴물같이 이기적일 수 있을까?

쓰디쓴 후회가 영혼을 잠식했다.

최유라. 언제나 최유라였다.

그 순간, 아라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는 거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살아있는 이준이가 건강한 모습으로 달려왔다.

이건 끔찍하고도, 불가능한 두 번째 기회였다.

그 파멸적인 미래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되찾고, 아들을 지키고, 그들에게 죗값을 치르게 할 것이다.

제1화

서아라가 숨을 헐떡였다. 가슴이 조여오며 폐를 짓누르는 듯했다.

여섯 살 아들 이준이가 공포로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엄마?”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그녀는 에피펜을 더듬었다. 아나필락시스 쇼크.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지훈 씨한테… 전화해…” 그녀가 힘겹게 말했다. “1…1…9…”

기특하게도, 용감한 이준이는 엄마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작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더듬었다.

아이는 아빠인 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엄마가 숨을 못 쉬어요! 상태가 너무 안 좋아요!” 이준이가 전화기에 대고 울부짖었다.

지훈의 목소리는 멀고, 짜증이 섞여 있었다. “아마 그냥 공황장애일 거야, 이준아. 에피펜 놔드려. 아빠 지금 유라 씨랑 중요한 미팅 중이거든. 곧 들어갈게.”

“아니에요, 아빠! 심각해요! 119 부르라고 했어요!”

“알았어, 알았어. 구급차 불러줄게.” 지훈은 말했지만, 그의 말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했다.

몇 분 후, 아라가 고통 속에서 의식을 잃어가고 있을 때 지훈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이준이가 엄마의 귀에 휴대폰을 대주었다.

“아라야? 들어봐, 유라 씨가 넘어졌어. 발목을 심하게 삐끗했대. 당신 부르려고 했던 구급차, 유라 씨한테 보냈어. 거기가 더 가깝고, 많이 아프다니까. 당신은 그냥 에피펜 맞으면 괜찮을 거야.”

아라의 세상이 산산조각 났다. 최유라. 언제나 최유라였다.

이 말을 들은 이준이가 비명을 질렀다. “안 돼요! 엄마가 도움이 필요해요!” 아이는 휴대폰을 떨어뜨리고 문으로 달려 나갔다. 아마 옆집 김 여사님을 부르러 가는 것 같았다.

경적이 울렸다. 끔찍한 충돌음.

흐릿한 의식 속에서 아라는 이준이가 아닌 다른 종류의 비명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정적.

그녀 자신의 숨이 마지막으로 거칠게 끊어졌다. 영혼이 육체에서 찢겨져 나가 위로 떠오르는 듯했다.

이준이가 보였다. 길 위에 쓰러져 있었다. 미동도 없이.

어느새 구급대원들이 나타나 그녀에게 응급처치를 하다가, 이준이에게 달려갔다. 너무 늦었다.

그 이미지가 그녀의 영혼에 불타듯 새겨졌다. 지훈이 유라를 선택했기 때문에, 작고 부서져 버린 이준이.

절망. 그 단어로는 부족했다. 공포. 슬픔. 아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녀의 심장, 혹은 그 남은 것이 산산조각 났다.

그녀는 제 비극 속의 유령처럼, 그들이 이준이를 하얀 천으로 덮는 것을 지켜봤다.

박지훈. 이건 그의 잘못이었다. 그의 방치. 그의 괴물 같은 이기심.

최유라. 그 여자.

만약 다시 한번 기회가 있다면. 만약 돌아갈 수 있다면.

절대 박지훈을 내 인생에 들여놓지 않을 것이다. 이준이를 지킬 것이다.

그들에게 죗값을 치르게 할 것이다.

고통은 절대적이었다. 쓰디쓴, 영혼을 잠식하는 후회.

“박지훈,” 그녀의 영혼이 차가운 분노의 서약처럼 속삭였다. “다음 생이 있다면, 당신 같은 사람 절대 만나지 않을 거야.”

서아라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는 거실 바닥에 있었다. 가슴이 아팠지만, 숨은 쉴 수 있었다.

손이 떨렸다. 목을 만져보았다. 부어오르지 않았다.

이준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이준아!”

아들 방에서 이준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달려 나왔다. “엄마? 괜찮아? 이상한 소리 내고 있었어.”

그녀는 아들을 꽉 껴안았다. 아이가 낑낑거릴 정도로 세게. 살아있다. 살아있었다.

분명 눈은 충혈되어 있을 터였다. 손은 여전히 떨렸다.

길거리의 기억, 그 충돌음, 하얀 천… 너무나도 생생했다.

벽에 걸린 달력을 보았다. 오늘 날짜. 바로 그날이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기적. 끔찍하고도, 두 번째 기회.

혼란스러움과 함께 아들을 지켜야 한다는 맹렬한 결심이 솟아올랐다.

그 미래가 현실이 되게 놔둘 수 없었다.

커피 테이블 위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알림이었다. 인스타그램.

최유라.

아라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집어 들고, 앱 위에서 손가락을 망설였다.

알아야만 했다.

유라의 스토리: 호화로운 저녁 식사. 그 옆에서 웃고 있는 지훈.

그리고 유라의 손에는 새롭게 반짝이는 반지. ‘약속 반지’였다.

캡션은 이랬다: “내 잠재력을 진정으로 알아봐 주는 사람과 미래를 만들어가는 중. 내 웰니스 브랜드 론칭을 지지해줘서 너무 고마워! #새로운시작 #든든한지원군.”

게시물 날짜: 어젯밤.

새로운 고통. 분노. 혐오감.

그는 그녀와 결혼한 상태에서, 이준이가 멀쩡히 살아있는 동안에도 이미 유라와 ‘미래를 만들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떻게 인간이 이토록 기본적인 양심조차 없을 수 있을까?

현관문에서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지훈이 휘파람을 불며 들어왔다.

그는 아라의 얼굴을 보고 멈칫했다.

“어, 왜 그래? 귀신이라도 본 사람 같네.”

그에게선 유라의 역한 향수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옷깃에는 그녀의 것이 아닌 립스틱 자국이 묻어 있었다. 그는 언제나 이렇게 부주의했다.

“당신이 예민한 거야.” 그가 늘 하던 말이었다. 그 말은 신경을 긁었고, 신체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지훈 씨,” 아라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팽팽했다. “우리 얘기 좀 해.”

“만약 내가 오늘 당신이 최유라랑 있느라 죽을 뻔했고, 이준이도 죽을 뻔했다고 말하면, 뭐라고 할 거야?” 아라가 위험할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어디 아파?”

그녀는 그의 텅 빈 눈을 보았다.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눈빛.

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영원히.

피로감이 무거운 망토처럼 그녀를 덮었다. 씁쓸함은 익숙한 맛이었다.

그녀는 몇 년을 낭비했다.

“나 이혼하고 싶어, 지훈 씨.” 그 말은 자유의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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