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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사랑했던 남자, 차이현과의 결혼식이 몇 주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의 미래를 위한 모든 준비는 끝났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계획된 삶이었다.
그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현의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 서지우가 심각한 기억상실증에 걸린 채 발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녀는 아직도 자신이 이현의 여자친구라고 믿고 있었다.
이현은 우리의 결혼식을 미뤘다. 그리고 내게 자신의 형, 차이준의 여자친구인 척해달라고 부탁했다. 전부 “지우를 위해서”라는 말과 함께.
나는 그가 지우와 함께 과거를 재현하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며 지옥 같은 고통을 견뎌야 했다. 한때 나를 향했던 그의 모든 다정한 몸짓은 이제 전부 그녀의 것이었다.
지우의 인스타그램은 두 사람의 “다시 불붙은” 사랑을 위한 공개적인 성지가 되었다. #진정한사랑 이라는 해시태그가 모든 사진에 도배되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끝내고 싶은 마음에 획기적인 치료법을 가진 병원까지 찾아냈지만, 이현은 코웃음 치며 무시했다.
그러다 나는 그의 진심을 엿듣고 말았다. 나는 그저 “대체품”일 뿐이었다. 어차피 “갈 데도 없는” 여자니까 얌전히 기다릴 “쿨한 여자”.
내 인생의 5년, 내 사랑, 내 헌신이 한순간에 쓰고 버리는 소모품으로 전락했다.
그 차갑고 계산적인 배신감에 숨이 멎었다.
그는 내가 자신의 덫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마음대로 나를 이용하고, 나중에 돌아오면 내가 고마워하며 받아줄 거라고 믿었다.
온몸의 감각이 마비된 채, 나는 비틀거렸다.
그리고 그때, 나는 이현의 조용한 형, 이준을 만났다.
“결혼해야겠어요, 이준 씨. 누구든 상관없어요. 최대한 빨리요.”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조용히 모든 것을 지켜보던 이준이 대답했다. “내가 그 상대가 되어주겠다면요, 윤서 씨? 진짜로.”
고통과 지독한 복수심에 불타오르던 내 안에서, 위험하고도 절박한 계획이 피어올랐다.
“좋아요, 이준 씨.” 새로운 결심이 내 목소리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이현 씨가 당신의 신랑 들러리가 되어야 해요. 그리고 제 손을 잡고 식장에 입장해야 할 거예요.”
가면극은 이제 곧 시작될 터였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정한 규칙대로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이현은 그 신부가 바로 나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제1화
고급스러운 크림색 종이에 금박으로 새겨진 청첩장은 이미 모두에게 발송되었다. 하윤서 & 차이현.
우리의 결혼식은 불과 3주 앞으로 다가왔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유서 깊은 대저택 웨딩홀도, 화려한 꽃들도, 완벽하게 수선된 내 드레스도 모두 준비되었다.
나는 5년간 이현을 사랑했다. 이제 막 공식적으로 시작되려던 우리의 5년이었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요트 사고.
이현의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 나보다 먼저 몇 년을 사귀었던 서지우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살아는 있었지만, 심각한 기억상실증에 걸린 채로.
그녀는 지난 10년의 세월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녀의 정신은 열일곱 살에 멈춰 있었고, 여전히 이현을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이현은 곧장 그녀에게 달려갔다.
나는 이해했다. 충격적인 비극이었으니까.
하지만 우리 집으로 돌아온 그의 잘생긴 얼굴은 어둡게 그늘져 있었다.
“윤서야, 우리 결혼식… 미뤄야 할 것 같아.”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미루자니? 이현 씨, 대체 왜?”
“지우가… 지금 너무 불안정해. 의사 선생님이 어떤 충격이라도 받으면… 치명적일 수 있대. 자기가 아직 내 여자친구인 줄 알아.”
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며 그 말을 이해하려 애썼다. “자기가… 당신 여자친구라고 생각한다고?”
“응. 그리고 윤서야, 의사 선생님이 진실을 말하면 안 된대. 아직은. 감당하지 못할 거래.”
차가운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그래서, 그게 우리한테 무슨 의미인데? 우리 결혼식은?”
그는 완벽하게 매만진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일단은, 우리가 장단을 맞춰줘야 한다는 뜻이야. 지우를 위해서.”
“어떻게 장단을 맞추는데?” 내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지우는 나한테 이준이 형이 있다는 걸 알아. 의사 선생님이… 방법을 하나 제안했어. 네가 이준이 형 여자친구인 척하는 거야. 아주 진지한 사이인 것처럼.”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이준 씨 여자친구? 이현 씨, 지금 진심이야?”
“아주 잠깐만이야, 윤서야. 지우가 좀 더 안정을 찾을 때까지만. 제발. 날 위해서, 그리고 지우를 위해서 이렇게 해줘.” 그는 내 손을 잡으며 애원하듯 나를 바라봤다.
그는 내가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고 안정적인 가정을 얼마나 갈망하는지, 가족이라는 말에 얼마나 약한지 알고 있었다. 내가 그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 우리는?”
“우리는 여전히 우리지, 자기야. 이건 아무것도 바꾸지 않아, 정말로. 그냥… 잠시 멈춤일 뿐이야.”
잠시 멈춤. 우리의 결혼식, 우리의 인생이 그의 과거에서 온 유령 때문에 잠시 멈춤 상태가 되었다.
“지우는 우리 부모님 댁에서 지낼 거야. 그게 최선이라고들 생각해. 그리고 너는… 아주 그럴듯하게 연기해야 할 거야.”
“그럴듯하게?”
“지우가 널 만나고 싶어 할 수도 있어. 이준이 형 여자친구를.”
이준이 형 여자친구. 그 단어가 입안에서 재처럼 까끌거렸다.
일주일 후, 지우는 나를 “새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현이 지우의 손을 잡고, 나는 이준의 곁에 서서 그곳에 속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썼던, 지독하게 어색한 첫 만남 이후였다.
“미래의 형님!” 지우는 해맑게 외쳤다. 그녀의 순수한 눈동자는 이현을 향한 숭배로 가득 차 있었고, 그 모습에 나는 속이 울렁거렸다.
그 후 한 달은 조용한 고통의 연속이었다.
이현은 지우와 함께 있을 때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옛 데이트를 재현했고, 그들의 추억이 깃든 장소로 그녀를 데려갔다. 그는 내가 처음 사랑에 빠졌던 그 다정하고 매력적인 남자친구의 모습이었지만, 그 대상은 내가 아니었다.
지우의 인스타그램은 그들의 “다시 불붙은” 사랑을 위한 성지가 되었다. #진정한사랑, #두번째기회 같은 해시태그와 함께 활짝 웃는 두 사람의 사진이 매일 올라왔고, 모든 사진에는 이현이 태그되어 있었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려 노력했다. 이건 일시적인 상황일 뿐이라고, 지우의 건강을 위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나는 내 건축 설계 일에 몰두했다. 사려 깊은 공간을 디자인하며, 내 삶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는 안정을 벽돌과 모르타르로라도 쌓아 올리고 싶었다.
그러다 나는 한 줄기 희망을 발견했다. 최첨단 기억상실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서울의 한 유수 신경과학 연구소였다. 나는 몇 시간 동안 자료를 찾아보며 희망에 부풀었다. 이게 해결책이 될 수 있었다. 지우가 나으면, 내 삶도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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